나치의 망령인가, 유럽 휘감는 극우주의

입력
2016.05.23 20:00
구독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선전한 노르베르트 호퍼 자유당 후보. 빈=AP 연합뉴스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선전한 노르베르트 호퍼 자유당 후보. 빈=AP 연합뉴스

유럽 극우정당들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몰려든 난민에 대한 반감과 유럽 회의주의 바람을 타고 약진하고 있다. 중도 후보들이 모두 탈락한 오스트리아 대선 결선에서도 극우정당 자유당(FPO)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가 막판까지 선전한 끝에 근소한 차로 패했다.

22일(현지시간)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선 결선 개표 결과, 녹색당의 지원을 받은 좌파 성향의 무소속 알렉산더 반데어벨렌(72)후보가 당선됐다. 극우 성향의 호퍼 후보는 비록 ‘첫 극우 색깔의 서유럽 대통령 당선’이라는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부재자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반데어벨렌 후보를 2~3%포인트 차로 앞섰다. 중도 집권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민주당(SPO)과 인민당(OVP) 후보들은 이미 4월 24일 치러진 1차 선거에서 11%대 득표에 그치며 탈락했다. 반면 호퍼 후보는 1차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예고했었다.

사실상 내각제로 운영되는 오스트리아에서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수반 역할만 맡고 있지만,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표심은 ‘극우 노선의 상당한 약진’으로 분석된다. 사민당의 베르너 파이만 전 총리는 9일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민 포용정책을 내세우던 사민당 내각이 올해 들어 발칸반도 국가들과 정책 보조를 맞추며 난민 유입 제한에 합의하는 등 반난민 노선으로 돌아선 것도 연정 파트너인 우파 인민당과 극우 자유당의 압력에 의한 결과다.

이민자들에 의한 범죄도 극우정당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트라이스키르헨에서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소년의 72세 노인 성폭행 사건으로 오스트리아 내 이민자에 대한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졌고, 현지 언론들은 범죄 증가와 이민자 유입을 연관시키는 보도를 내보냈다.

극우정당의 약진은 오스트리아만의 상황이 아니다. 프랑스의 마린 르펜 대표가 이끄는 국민전선(FN)은 2015년 지방선거에서 전체 득표율 1위를 달렸다. 다만 결선에서는 중도좌파 사회당과 보수 공화당의 사실상 연합으로 1명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독일에서는 반이민 노선을 주창하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016년 작센안할트주를 비롯한 3개주 의회선거에서 선전했다.

북유럽과 동유럽에서는 이미 극우 정당이 정권에 참여하며 반난민 정책을 이끌어내고 있다. 덴마크인민당(DF)은 소수내각 자유당을 흔들며 반난민 입법을 주도하고 있고 헝가리 요빅당도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반난민 우파 피데스당 정권을 측면지원하고 있다. 폴란드의 베아타 시드워 총리가 이끄는 법과 정의당(PiS)도 대표적인 극우정당으로 꼽힌다.

영국 방송 BBC는 극우정당의 성장이 유권자들이 극우 노선에 동의한 결과라기보다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 표출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유럽의회를 위시한 주류 정치권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며 펼치는 난민 포용정책에 가난한 유럽인들이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2008년 유럽 금융위기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논란으로 유로화와 유럽 통합에 대한 불신감이 커지면서 유권자들은 유럽회의주의를 표방하는 극좌 또는 극우정당을 통해 정치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