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뉴스] 예비역들이 새정치에 ‘단체 방문’한 이유

입력
2015.11.1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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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새정치민주연합에 낯설지만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송영무 전 해군 참모총장, 이영하 전 공군참모차장, 정표수 예비역 공군 소장, 이태연 해군 예비역 중장, 김단륜 해군 예비역 준장, 성철수 해군 에비역 대령, 송병근 예비역 대령 등이 이날 입당을 했습니다. 이들 말고도 이름을 공개하지 말아달라 요청한 또 다른 군 출신 인사들까지 더하면 이날 입당원서를 제출한 이들은 20명에 이른다는 게 당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이들은 새정치연합이 당 브레인 역할을 하는 민주정책연구원 안에 만들기로 한 안보연구소의 연구위원으로 활약하면서 국방 안보 분야의 주요 이슈에 대해 자문하고, 내년 총선을 대비해 국방 안보 분야의 정책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탤 예정이라고 합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2일 국회 의원식당에서 열린 안보연구소 연구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 송영무(오른쪽 세번째) 전 해군 참모총장 등 예비역 장성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2일 국회 의원식당에서 열린 안보연구소 연구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 송영무(오른쪽 세번째) 전 해군 참모총장 등 예비역 장성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새정치연합이나 정의당 등 진보 진영은 안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일반적 시각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 입장에서 안보를 챙긴다는 것은 북과 군사적 대결에서 이기는 상황을 대비해야 하고 그런 상황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비롯해 남북 화해를 우선으로 하는 지금의 야당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주요 선거 때마다 보수 진영이 ‘대결의 상대인 북과 손을 잡으려 한다’는 식의 ‘종북 프레임’으로 공격할 때마다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 야당에 군 출신 인사들이 대거 합류한다는 것은 어딘가 어색함이 느껴질 일입니다. 종종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이 기 싸움 차원에서 군 인사를 영입하거나 자신의 당 후보에게 지지선언을 얻어내는 경우는 있지만 이번처럼 평상시 단체로 당을 찾아 온 것은 이례적입니다. 새정치연합이 지난 19대 총선에서 4성 장군 출신인 백군기 의원을 영입해 비례대표 공천을 한 적이 있지만 군 출신 인사를 대거 영입해 당내 안보 관련 기구를 꾸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더구나 이번에는 당에서 영입을 추진한 인사들 못지 않게 스스로 연구위원 지원 공고를 보고 찾아 온 이들도 여럿 된다고 합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최근까지 군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신 몇 분은 군 관련 공식 활동을 중단하고 입당했다”고 전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궁금해서 이번에 입당한 이영하 전 공군참모차장(전 레바논 대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기자에게 “경제와 안보는 여와 야를 가릴 문제가 아니고 분단 국가인 우리 상황에서 든든한 안보를 소홀해서는 안 된다”며 “일반인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문재인 대표 체제 이후 새정치연합이 든든한 안보라는 점을 강조하는 모습에서 과거와 다른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문 대표가 ‘든든한 안보, 유능한 안보정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예전보다 안보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말도 함께 했습니다.

문 대표는 지난 12일 이들에 대한 연구위원 위촉식에서 “유능한 안보 정당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게 됐다. 아주 귀한 분들을 삼고초려 해 어렵게 모셨다”며 “이제 당이 명실상부한 든든한 안보 정당으로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안보는 여야가 따로 없는 국가존립의 문제”라며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경제발전도 가능하지 않다. 안보는 평화이자 경제”라고 강조했습니다. 문 대표는 아울러 박근혜 정부의 안보 능력에 대한 비판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문 대표는 “목함지뢰 사건 등 총체적 안보무능이 참담하게 드러났는데도 대통령은 안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며 “이 정부는 총체적 무능에 총체적 부패까지 더해져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전 차장을 포함해 참가한 이들 중에는 최근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에 대한 군의 부실한 처리,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중에 국방부가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면서 군이 ‘엉뚱한’ 논란에 휩싸이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친정’을 위해서라도 야당에서 쓴 소리와 충고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볼 기회를 보수정당이 아닌 새정치연합이 만들어 줬습니다.

이들의 역할을 기존 정당에 참여했던 군 인사들과는 사뭇 다를 것 같습니다. 안보연구소에서 인사, 전력 등 직능 별 연구위원으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이들의 영입을 계기로 군사전문가 김종대씨를 국방개혁단장으로 영입하며 군사, 안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정의당과도 정책 공조에 나설 방침입니다.

당 안보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군기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영입이 끝이 아니다”며 “2차로 스무 분 정도가 더 참여할 예정이며 이 중 장성 출신은 1차 때보다 더 많다”고 전했습니다. 이영하 전 공군참모차장도 “일단 내가 일을 해보고 긍정적이라고 평가를 하면 선후배 장성들에게도 추천을 해 볼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군 출신 인사들과 새정치연합의 ‘케미(호흡)’가 얼마나 잘 맞을 지, 이들이 ‘안보=보수’라는 선입견을 얼마나 깰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박상준기자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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