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신공격과 막말, 국정화 논란의 본질 흐린다

입력
2015.11.08 20:00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이 갈수록 저급한 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과 비방이 난무하고 있다. 국정화 찬반에 대한 대립과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이런 비이성적 행태는 사태의 본질을 흐린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국정교과서 반대시위에 참여한 여고생은 인신공격성 댓글과 전화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보수성향 단체들은 비난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여학생의 가족과 부모 신상털기에 나섰다. 해당 학교는 항의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다른 반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학생 실명을 거론해 공격하고, 심지어 학교에 학생징계 요구까지 쏟아내고 있다. “교사들이 학생의 사상을 오염시켰다”며 교육부에 해당학교 교사들의 징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국정화 반대 콘서트를 연 가수 이승환에게는 ‘종북 가수, 빨갱이 가수’꼬리표가 붙었다. ‘반 국가선봉에 섰던 종북 가수 신해철이 비참하게 불귀의 객이 됐다. 다음은 빨갱이 가수 이승환 차례’라는 협박 메시지가 공개됐다.

국정교과서 집필진에 대한 인신공격도 도를 넘어섰다.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성희롱 파문으로 대표집필진에서 사퇴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에게는 원색적이 비난 글이 쇄도했다. “나라를 망치는 늙은이” “치매가 있는 노인네”등의 막말과 함께 “매국노 이완용의 조카”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집필 참여가 예상되는 학자ㆍ교수들도 협박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식의 무분별한 편가르기는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국정화를 강행한 정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찬반 의사를 인권침해와 비방, 협박 등의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은 비민주적일 뿐 아니라 건전한 토론마저 방해한다. 사실에 근거한 이성적인 접근이 다수의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경찰은 집필 관련자에 대한 협박이나 폭행, 인터넷 상 명예훼손 등에 대해 엄정 조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보수단체들의 국정화 반대 시민, 학생에 대한 폭언성 인터넷 댓글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 경찰의 이런 편향은 국정화 반대 학자나 시민에게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이쪽저쪽 가리지 않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 요구되는 것은 국정화 강행이 불가피한가에 대한 합리적 토론과 논쟁이다. 그 과정은 철저히 사실과 상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정부는 공권력으로 국정화 반대 여론을 옥죄려 들지 말고 귀를 열어야 한다. 진정으로 국가를 위한 길이 뭔지를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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