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현대사보다 상고사ㆍ고대사가 더 걱정"

입력
2015.11.0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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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전문가인 송호정 교수는 "국정교과서에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상고사ㆍ고대사"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고조선 전문가인 송호정 교수는 "국정교과서에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상고사ㆍ고대사"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현재 검인정교과서도 근현대사가 아니라 실은 상고사, 특히 고조선사가 가장 문제입니다. 만일 국정교과서에서 있지도 않은 역사를 우리 역사처럼 쓴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외교적으로도 우스운 일이 될 겁니다.”

최근 ‘처음 읽는 부여사’(사계절 발행)를 펴낸 고조선 전문가 송호정(52)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국정교과서를 펴내며 상고사ㆍ고대사 비중을 늘리겠다는 정부 발표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송 교수는 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상고사와 관련해 일부에서 “역사 전공자들을 식민사학자로 매도하고 전공자도 아닌 사람들이 학문 결과물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을 하고 있다”며 “상고사ㆍ고대사에 대한 왜곡된 역사 인식은 여야 정치권이 똑같다”고 말했다.

고조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송 교수는 2002년 ‘단군, 만들어진 신화’라는 책으로 적잖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고구려나 백제, 신라의 건국설화와 달리 단군은 신성성만 있을 뿐 역사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는데 “신들의 이야기를 신화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일제 식민사학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고조선의 위치를 한반도로 축소했다는 욕도 먹었다.

송 교수의 주장은 식민사학으로 무조건 매도하려 들지 말고 “학문적 근거를 토대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그는 “낙랑군의 위치를 규정하면 한사군의 위치를 규정할 수 있는데 중국 한대 유물과 고조선 후기 유물이 함께 나온 건 대동강 유역밖에 없다”며 “국민들에게 위대한 상고사라는 환상을 갖게 하는 건 유신시대의 민족주체사관과 바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으로 상고사ㆍ고대사 교육을 강화한다는 논리에도 반대했다. 학문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논리가 없다면 외교적으로 문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역사 왜곡을 수수방관하자는 건 결코 아니다. ‘처음 읽는 부여사’가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항해 우리만의 논리와 방법론을 찾자는 뜻에서 쓴 책인 것만 봐도 그렇다. 고대사의 변방에 있던 부여의 역사를 한국 고대국가의 출발점이자 구심점, 원류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담았다.

송 교수는 “현행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부여를 옥저ㆍ동예ㆍ삼한과 같은 초기 국가로 간단하게 처리하고 넘어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등장한 부여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도 3세기 중엽까지 “이웃나라의 침략으로 파괴된 적이 없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강력한 군사력과 통치력을 소유했던 나라고 494년 고구려에 귀속되기 전까지 700여년 동안 나라를 유지했다. 송 교수는 “고조선이 우리의 첫 국가라는 사실은 변함 없지만 고조선에 너무 경도돼 있는 측면이 있다”며 “부여와 달리 고조선의 역사적 경험은 다음 시대로 잘 계승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부여가 고대국가에 영향을 준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고구려와 백제, 발해, 가야 심지어 신라까지도 부여에 원류를 두고 있다”며 고구려의 주몽설화가 부여 동명설화의 판박이라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신라와 가야의 건국설화도 동명설화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다.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긴 백제의 성왕이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고친 것 역시 백제가 부여를 계승했다는 지배층의 의식을 보여준다. 그는 “우리 민족사의 흐름을 고조선과 부여에서 찾는다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는 논리를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역사학이 식민지 콤플렉스, 국수주의와 결합해 관제 민족주의를 만들어낼 것을 우려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민족주체사관이라는 이름 아래 부르짖었던 한국적 민족주의가 재연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국정 역사교과서에 반대하는 그는 “혹시라도 역사학 전공자를 식민사학자로 매도하는 유사 역사학자가 만드는 국정 교과서라면 하루 빨리 폐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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