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명예교수 “역사를 쓰는 일은 역사학자에게 맡겨야”

입력
2015.10.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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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오만도 이런 오만이 없다”며 일침을 놓았다. 사진은 올 4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 당시의 이 명예교수.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오만도 이런 오만이 없다”며 일침을 놓았다. 사진은 올 4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 당시의 이 명예교수.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이 국론분열의 모든 책임은 국정화를 해야 한다는 뜬금없는 주장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킨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대해 역사학계, 학생사회 등의 전 방위적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준구(66)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처사”라며 국정화에 일침을 놓았다.

이 명예교수는 19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긁어 부스럼 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라는 글에서 “어떤 구실을 대고 있든, 막무가내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의 속셈은 뻔하다”며 “그들에게서는 좌편향이라는 라벨을 붙여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역사를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렇지 않다면 왜 구태여 국정화를 통해 다양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해석을 하나로 통일시키려 들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는) 근현대사 전공자들 대부분이 민중사관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편향된 교과서를 쓸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역사에서 정론이 무엇이고 편향된 의견이 무엇이냐”며 “절대 다수의 역사학자들이 지지하는 역사해석이 바로 정론이고, 그렇다면 현재의 교과서들이 바로 그 정론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가열되고 있는 ‘현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됐다’는 주장의 모순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이 명예교수는 “다수가 지지하는 역사 해석을 민중사관이라는 라벨을 붙여 배격하는 자세 그 자체가 억지가 아닐 수 없다”며 “자기네가 만든 국정 교과서에 ‘올바른’이란 수식어를 붙이겠다는데 오만도 이런 오만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나는 역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인 역사학자의 역사 해석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지금 국정화를 부르짖는 사람들도 역사에 문외한이라는 점에서 나와 전혀 다를 바 없는데도 어찌하여 그들은 역사학자들의 해석이 틀리고 자기네들의 해석만 맞다고 우기는 만용을 부리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정부 주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또 “만약 우리의 근현대사가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마땅한 일이라면 역사학계에서의 진지한 논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라며 “정부, 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여 국정화를 강행한다면 우리 역사학계의 학문의 자유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정치권을 향해 ‘역사의 문제에서 손을 떼라’고 호소했다. 이 명예교수는 “국정화 논쟁이 오직 우리의 아까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낭비를 가져와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력 낭비를 초래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더 이상의 국론분열과 국력의 낭비를 막기 위해 정치인들이 역사의 문제에서 깨끗하게 손을 떼야 한다"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말이 있듯, ‘역사를 쓰는 일은 역사학자에게’ 맡겨야 마땅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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