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결국 정부 의지대로… '역사' 뇌관 터지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교육부, 국정화 전환 행정예고
"편향성 바로잡기 불가피한 선택"
'올바른 역사교과서'로 이름 붙여
집필진 구성·내용 등 벌써 우려
사회통합보단 분열 확대 불보듯
메가톤급 파장 이제부터가 시작
정부의 선택은 예상대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였다. 국가가 집필할 국정 교과서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로 명명됐다. “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한 사회적 논쟁을 종식시켜 국민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명분도 제시됐다. 그 ‘불가피한 선택’이 논쟁 종식이 아닌 확대를, 국민통합보다는 분열을 야기한 결정이라는 비판은 그치지 않는다.
교육부는 12일 2017년부터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를 현행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중ㆍ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ㆍ검ㆍ인정 구분(안)’을 행정예고 했다. 이에 따라 국사편찬위원회가 내달 집필진을 구성해 1년간 집필하고, 학생들은 2017년부터 첫 역사 교과서로 배우게 된다.
이날 행정예고는 그간 당정청의 역사 교과서에 대한 인식을 고스란히 담았다. 현재 검정제 아래 출판된 8개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사실오류 및 이념적 편향성’이 그 인식의 골자다. 이와 관련,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역사교과서가 검정제 도입 이후 지속적인 이념논쟁과 편향성 논란을 일으켜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정 교과서 집필진이 다양한 관점을 가진 인사로 구성되지 못했고, 사실 오류와 편향성을 바로 잡으려는 정부의 노력(수정명령)에 소송으로 대응해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고 설명했다. 김재춘 차관은 일부 교과서가 ‘독재’ 표현을 북한에는 2번 사용하면서 남한에는 24번 사용한 것과, 6ㆍ25전쟁 책임을 남북 모두에게 있는 것처럼 기술한 내용 등을 편향성의 사례로 제시했다.
하지만 편향성을 바로 잡는 방안으로 정부가 역사의 국정화 카드를 선택한 데는 사회적 합의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국내 역사학계가 국정화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국정화 드라이브는 결집된 보수층을 기반으로 한 여론 우위에 대한 확신을 가진데다, 박 대통령이 국정화에 대한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국정교과서를 발행하는 곳은 터키 그리스 아이슬란드의 3곳뿐일 만큼 드물다. 실제 박 대통령은 과거 “부모님의 뜻을 빛내드려야겠다는 것에 모든 것을 바쳐도 충분한 보람이 있다”(1989년 언론 인터뷰), “우리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2008년)는 등의 역사 인식을 내비쳐왔다. 특히 2013년 6월에는 “왜곡된 역사 인식은 교육현장에서 반드시 바로 잡아야”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기류 속에 2년 전 “검인정제가 낫다”는 여당(여의도연구원 보고서)과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교과서를 학교 현장에 보급한다”던 교육부(수정된 8종 교과서 보급 때 보도자료)의 입장은 ‘수정’됐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과)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화, 통합진보당 해산 등에 이어 역사교과서조차도 ‘좌편향’ 굴레를 씌움으로써 국정화에 무게가 쏠린 데는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작동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정부의 국정화 추진은 꼭 필요해서 추진하는 정책이 아닌 국정화를 위해 편향성이라는 근거를 마련한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좌편향 교과서들이든 우편향 교과서건 정부가 지적하는 ‘편향성’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없진 않다는 것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논란은 이제 시작이다. 벌써 대안교과서 발간 목소리가 높을 만큼 집필진 구성부터 집필 내용까지 하나하나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이념성이 개입되는 역사문제 논란은 정치ㆍ사회적 분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정화 결정 여부를 놓고 벌인 지금까지 논란이 예고편이었다면, 이제 논란의 본편이 시작된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터뜨린 ‘국정화 폭탄’이 향후 정국과 사회에 메가톤급 파장을 일으킬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종=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