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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죽은 날" 학생, 시민단체 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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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역사학도 1991명 규탄 서명
학계선 집필 거부 등 불복종 움직임
"서두르다 수능 오류 부를수도" 우려
교육 현장 혼란 피할 수 없어
보수단체들은 환영 기자회견
12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청운동 동사무소 앞. 원로 역사학자와 독립운동가 후손, 학생과 학부모 60여명이 모여들었다. 일부는 검은 넥타이에 상복을 입고, 몇몇은 일본 순사 제복과 군사독재 시절 군복을 착용했다. 전국 466개 시민단체가 모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소속인 이들은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화 되면 아픈 역사가 반복된다는 의미로 이 같은 옷을 입었다”고 말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수구 세력의 친일ㆍ독재 미화 시도로 보는 시각인 셈이다. 차리석 임시정부 국무위원의 후손 차영조(71)씨는 마이크를 들고 “독일 정부는 과거를 반성했는데 우리 정부는 독립운동사를 지우고 친일ㆍ독재의 과거를 미화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청천 광복군 총사령관의 외손자인 이준식(59)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굳은 표정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처음 상복을 입었다”며 “미래 세대는 오늘을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죽은 날로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 방침을 발표한 12일 전국 곳곳에서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종교계,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전국 역사교육학과 대학생ㆍ대학원생ㆍ졸업생들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서울대 고려대 등 66개 학부ㆍ대학원 학생 1,991명의 서명을 받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규탄 긴급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교과서 국정화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라며 “우리는 역사 서술이 정치권의 손에 좌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였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강성욱(22ㆍ한신대)씨는 “특정 단체도, 정당 소속도 아닌 순수한 역사학도로서 역사의 획일화에 반대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학생 17명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신고 하지 않고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종교계와 시민단체도 반대의 뜻을 밝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교육위원회는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적 정통성은 힘과 권력으로 억지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국민들에 의해 저절로 인정되는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흥사단도 이날 성명서에서 “정부가 국정 교과서 반대 여론을 의식해 ‘올바른 교과서’ ‘단일 교과서’로 미화하지만, 역사 해석을 독점해 청소년들에게 획일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불복종 운동’도 예상된다. 미래엔 교과서 집필자인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정부의 역사 통제를 막기 위해 시도교육청이 ‘인정 교과서’를 발행할 수 있는 방안을 활용해 대안 교과서 집필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은희 역사정의실천연대 사무국장은 “역사학계 차원에서 교과서 집필을 거부하는 불복종 운동을 벌이고 헌법소원까지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자율교육학부모연대 등 13개 보수 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위한 교육시민단체 협의회’는 성명서를 내고 “자기 부정적 역사인식을 극복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해 하나의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바른사회시민연대 등 8개 보수 시민단체들도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화 방침을 환영하는 등 보수 성향 단체들의 지지가 이어졌다.
교육 현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조왕호 서울 대일고 역사 교사는 “학생들이 정부 입맛에 맞게 쓰여진 내용들로 공부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역사 교사는 “새 국정 역사 교과서는 편향된 집필진, 짧은 집필기간의 문제점을 안고 있어 수능 오류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의 안양옥 회장은 “올바른 역사관 함양을 위해 국정화가 필요하다”며 정부의 방침을 지지했다. 중2 자녀를 둔 학부모 최모(43)씨는 “단일 교과서로 공부해 학생 평가가 공정해 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문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렇게 빨리 진행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진보 성향 교사들의 반대도 계속 될 것 같아 학교 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세대 갈등의 조짐도 엿보인다. 회사원 전모(27)씨는 “일부 독재정권 국가들만 사용하는 국정 교과서를 다시 부활시킨다는 정부와 여당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김성욱(69) 고엽제전우회 사무총장은 “역사는 단일한 것이고 교과서도 하나여야 한다”며 “산업화의 혜택을 누리는 젊은 세대들이 이승만ㆍ박정희 시대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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