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법인들 '무늬만 개방이사제'

입력
2015.09.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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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절반이 이해관계자 선임

총장 등 친ㆍ인척도 10% 육박

횡령 등 비리가 드러나 2004년 물러난 조원영 동덕여대 전 총장은 지난 1월 교육부의 이사 승인으로 사학에 복귀했다. 이후 7개월 만인 지난달 법인 이사회에서 이사장에 선임돼 조부-부모-자신으로 이어지는 족벌사학 체제를 굳혔다. 그가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대학구성원을 대신해 이사회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개방이사제 덕분. 개방이사제가 본연의 취지에서 벗어난 대표적인 사례다.

개방이사제가 유명무실하다는 평가 속에 실제 사립대 법인 절반에서 개방이사 자리에 이해관계자를 선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학의 개방이사 4명 중 1명은 학교와 직ㆍ간접적으로 엮여 있는 무늬만 개방이사들로 조사됐다.

23일 유은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사학법인 개방이사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 6월 현재 208개 사학법인 중 절반에 육박하는 91개(43.8%) 법인에서 이해관계가 있는 개방이사를 선임했다. 이중 28개 법인은 개방이사 모두를 이해관계자로 선임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208곳의 개방이사 525명 중 134명(25.5%)이 이해관계자로 채워졌다.

유형별로, 해당 대학의 전직 이사나 감사, 총장, 부총장, 교수 출신 인사가 60명(44.8%)으로 가장 많았으며, 동일법인 산하의 다른 학교 총장, 부총장, 교장, 교감, 교원 등이 24명(17.9%)로 뒤를 이었다. 법인 설립자나 이사장, 이사, 총장 등의 친ㆍ인척이 개방이사가 된 경우도 13명(9.7%)이었고, 현직 총장 6명(4.5%)도 학교 법인의 개방이사로 활동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 회사를 감시하겠다며 자식들이 사외이사가 되고, 자신에 대한 임면권이 있는 이사회를 들여다보겠다며 직원이 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정작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은 이런 이해관계자들의 사외이사 자격을 제한하는 상법의 규제를 받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개방이사에 법인의 직ㆍ간접적인 이해관계자가 다수 선임되는 데는 이들을 추천하는 개방이사추천위원회의 구성에 문제가 있는 탓이다. 개방이사에 대한 최종 선임권을 갖고 있는 법인이 추천위원회 위원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애초부터 독립적인 외부인사를 선임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 유은혜 의원은 “사학법인들의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이사회 운영을 견제한다는 개방이사제 취지가 전혀 달성되지 않고 있다”며 “개방이사의 구체적인 자격요건을 법령화 하는 제도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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