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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주지 않는 한 나를 파괴할 권리…" 자유의 극한 즐겼던 천재 사강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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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의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 1935~2004ㆍ사진)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마약 복용 혐의로 선 법정에서 진술했다. 저 말은, 그의 문학적 성취와 무관하게, 현대 개인의 정치적ㆍ윤리적 자유의 값진 테제가 됐다. 9월 24일은 그가 숨을 거둔 날이다.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자유의 두 개념’에서 자유를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로 나누어 설명했다. 적극적 자유는 주체로서 뜻을 정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요구되는 ‘~를 위한’ 자유이고, 소극적 자유는 내 의지와 행동에 누구도 개입하여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로 부터의 자유’다. 벌린은 적극적 자유에서 전체주의에 대한 부역 가능성을 보았다. 즉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자유를 절대화함으로써 타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거였다. 자유주의자 벌린은 뭔가를 적극적으로 행할 자유가 아니라, 행위를 방해 받지 않을 자유, 간섭에 저항하는 자유를 중시했다.
사강의 저 말 역시 소극적 자유의 도발적이고도 문학적인 절규였다.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교본이라 할 만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말이기도 했다. 밀이 자유론에서 줄기차게 강조한 것 역시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누구나 최대한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거였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서병훈 옮김, 책세상) 다만 밀은 “(자유는)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 미성년자나 ‘미개인’에 대한 ‘선의의 독재’를 옹호했다.
18세에 발표한 첫 작품 ‘슬픔이여 안녕(1954)’으로 프랑스문학비평상을 타며 일약 천재 문학소녀로 주목 받은 사강은 ‘한 달 후 일 년 후(57)’’브람스를 좋아하세요…(58)’ ‘고통과 환희의 순간(에세이,85)’ 등 소설ㆍ희곡ㆍ에세이로 문학적 명성을 쌓았지만, 자유분방한 사생활로도 유명(notorious)했다. 사치와 낭비, 목숨 건 스피드광, 두 차례 결혼과 이혼 그리고 동거…. 중년 이후 그는 만성 신경 쇠약과 수면제 과용, 마약, 도박 중독자로 지내다 경제적으로도 파산했고 노년을 아들에게 얹혀 지냈다. 에세이에서 그는 “사람이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렸고 그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나는 인생을 즐겼다. 신나는 일이었다”고 했다.
작가로서 그는 독자를 설득하기보다 매혹하기를 원했지만, 정작 자신은 무엇에도-문학에도- 매혹되지 않았던 듯하다. (소극적) 자유의 극한이 어쩌면 그러할 것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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