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벼랑 끝에 선 야당

입력
2015.09.22 15:34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에 대한 ‘정치적 재신임’이 이루어지고 최고위원회 폐지와 국민공천단 구성을 골자로 한 혁신안이 통과됐으나 제1야당의 원심력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박준영 전 전남지사의 신민당 창당 선언, 무소속 천정배 의원의 ‘개혁적 국민정당’ 가시화, 박주선 의원의 탈당에 이은 신당 창당 등 가히 ‘1인 정당’ 전성시대다. 야당의 난맥을 웅변으로 증명함과 동시에 한국 정당 체제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야권의 난맥은 새정치연합이 자초한 바가 크다. 지난 4ㆍ29 재보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는 어떠한 정치적 행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치적 책임 대신 혁신위란 기구를 띄워 오히려 주류의 패권주의를 강화하는 행태를 노출시켰다. 혁신안이 발표될 때마다 비주류의 반발은 강도를 더해 갔다.

총선을 앞두고 정당에서 공천을 둘러싼 지분 다툼이나 정치적 손익계산에 따른 계파 갈등은 불가피하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권력투쟁이며, 세력간의 쟁투가 정치의 본령인 갈등의 조정과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위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는 권력쟁취와 획득을 위한 명분과 이상이 확보될 때 최소한의 동력을 확보해 나간다.

정당체제는 시대와 정치상황 변화라는 변수가 발생하면 이합집산도 할 수 있고, 탈당에 이은 분당과 신당 창당도 언제든 가능하다. 합당이 아닌 정책연대나 후보단일화 등의 연합정치는 선거를 앞둔 훌륭한 정치 기술이자 묘미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기본 메커니즘인 선거라는 국민의 심판을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제1야당 내의 갈등이나 야권의 원심력은 어떠한 정치이론이나 명분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주류와 비주류가 공천을 둘러싸고 벌이는 초보적 수준의 갈등이라고 치부하기엔 이미 상대에 대한 적대의 수위 및 비난이 도를 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때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구 민주당과의 이합집산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구조적으로도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야권 분열의 역사는 깊다.

이러한 본질적 요인 이외에도 지난 총선과 대선 패배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정치적 씻김 굿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선에서 후보를 차지한 세력의 패권주의 강화라는 프레임이 야당에 덧씌워졌다. 주류와 비주류, 친노 대 비노의 갈등, 호남 민심 이반이라는 실체와 허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화석화된 현상을 타파하지 않으면 야권의 미래는 없다. 야권 전체의 흐름을 좌우하고 정치변화를 추동할 거대한 트렌드가 도래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현재의 독과점 양당체제에 근거하고 있는 불편한 정당체제를 소수와 약자의 목소리가 대표될 수 있는 다당제로 바꿔야 한다는 일관된 주장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는 신당 창당 선언은 호남이라는 특정 지역 출신 전ㆍ현직 정치인들이 세력간의 갈등에서 배제될 때 나타날 수 있는 불이익을 피하려고 개인적인 돌출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인구 구성비나 투표율 등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정치구도에서 야권의 분열로 궤멸을 자초하는 자살행위여서는 안 된다. 호남 신당의 창당으로 내년 총선에서 ‘1인 정당’의 수장인 ‘1인’만이 살아남으려는 정치적 구태와 퇴행이 될지, 야권의 재편으로 의미 있는 여야 관계의 재설정에 기여할지, 아직은 ‘판단정지’다.

후자의 결과가 도출된다면 지금 야권의 진통은 한국정당사를 새롭게 쓰는 단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 지도부에서는 자신을 내려놓고 진정한 승부를 거는 승부사의 모습도, 밀알이 되어 정권 창출을 통한 한국사회의 전환을 갈망하는 합리적 진보의 열정도 찾아보기 어렵다. 신당을 창당하려는 인사들은 그들의 연대가 한국야당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한국 야당의 위기다. 한국 정당 정치는 벼랑 끝에 섰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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