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난항 고위급 접촉, 이번만큼은 우리의 원칙대로

입력
2015.08.24 18:40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유례없는 마라톤 협상이 전개되고 있다. 23일 새벽까지 10시간 가까이 계속된 1차 접촉에 이어 재개된 2차 접촉도 만 하루를 훌쩍 넘어섰다. 언제까지 협상이 이어질 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마치 끝장토론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타결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협상이 장기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입장 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결말을 보겠다는 서로의 의지가 강하다 보니 쉽게 결렬을 선언하지 못하는 점도 있다. 북한은 여전히 최근의 군사도발이 남측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채 우리의 대북 심리전 방송 중단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북한이 도발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협상이 길어지는 것은 언급한 대로 북측의 사태해결 의지를 확인해 준다는 점에서 조심스럽게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남협상에 나서는 김정은 정권의 미숙함이 이런 진통의 배경이라는 것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사태 초기 해외언론을 통해 “남측 자작극”이라고 공언함으로써 스스로 출구를 막아버린 것이 문제였다. 도발에 대한 사과에 극히 인색했던 북한이 스스로 아니라고 한 것을 번복하는 것은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의 도발이 과거 긴장관계를 임계치까지 끌고 가면서도 파국은 피하는 특유의 ‘벼랑 끝 전술’과 달리 무모하게 전개됐다는 것도 지적된다. 한미 연합훈련이 펼쳐지는 와중에 도발을 감행한 것이나 서부전선 포격 불과 이틀 만에 느닷없이 대화를 제의한 것에서도 그런 미숙함이 드러난다. 중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전승절 행사를 목전에 둔 시기에 긴장국면을 조성한 것도 실착이다. 김정은 정권의 이런 무모함과 예측불허의 성격은 우리 정부가 감당해야 할 큰 숙제이기도 하다.

북한은 어제 침투목적의 특수부대원 수송이 목적인 공기부양정 20여 척을 서해 남포 해상까지 전진 배치하는 등 협상 와중에도 여전히 무력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잠수함 기지 이탈, 특수전 요원 전방부대 배치에 이은 것으로 3대 침투전력을 모두 동원한 것이다. 북한이 이율배반적 행동을 하는 것은 위협과 공갈로 협상장에서 우리측을 굴복시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

북한의 도발과 협상, 보상이라는 악순환을 끊는 차원에서라도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번 사태가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해 온 ‘남북관계 비정상의 정상화’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어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북한의 위협에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의지를 보인 것은 평가할 만 하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산가족상봉이나 평화공원 조성 등 우리측의 대북교류를 들고 나와 협상 의제를 물타기하려 한다는 말도 나온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도발 국면에 전념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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