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문 넘자 쾅… 부축하고 발 내딛자 쾅… 필사의 '포복 후송'

입력
2015.08.1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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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폭발부터 후송까지 15분

일촉즉발 상황서 침착 대응 빛나

부팀장 다리 절단 치료 중에도

다른 사람들 챙겨 전우애 뭉클

첫 번째 폭발도 그랬지만 5분 뒤 연쇄 폭발은 더더욱 예상치 못했다. 적의 추가공격을 배제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대원들은 포복 자세로 사주를 경계하며 쓰러진 2명의 전우를 후방으로 이동시켰다. 첫 폭발부터 부상자 후송까지는 단 15분이 걸렸을 뿐이다. 비무장지대(DMZ) 수색대원들의 침착한 대응과 전우애는 북한의 예기치 못한 도발의 현장에서도 빛났다.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리 군 수색대원 2명에게 중상을 입힌 지뢰폭발사고는 군사분계선(MDL)을 몰래 넘어온 북한군이 파묻은 목함지뢰가 터진 것으로 조사됐다. 합동참모본부가 이날 공개한 영상에 지뢰가 폭발한 뒤 수색대원이 부상한 동료를 후송하고 있다. 합참 제공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리 군 수색대원 2명에게 중상을 입힌 지뢰폭발사고는 군사분계선(MDL)을 몰래 넘어온 북한군이 파묻은 목함지뢰가 터진 것으로 조사됐다. 합동참모본부가 이날 공개한 영상에 지뢰가 폭발한 뒤 수색대원이 부상한 동료를 후송하고 있다. 합참 제공

● 수색팀장 “내게 맡기고 환자 후송하라”

4일 오전7시28분 육군 1사단 백학대대 수색대원 8명은 우리 군의 GP(DMZ내 전방감시초소)를 연결하는 추진철책의 출입문(통문) 앞에 도착했다. 7시33분 부팀장인 김모(23)하사가 선두에서 자물쇠를 열고 먼저 문을 넘어갔다. 지난달 22일 이후 13일만에 다시 찾은 곳이었지만 주위에 유실물이나 지뢰의 흔적은 없었다.

뒤를 이어 7시35분 하모(21)하사가 문을 넘어 발을 내딛는 순간 ‘꽝’하는 굉음이 철책선 주변을 강타했다. 출입문 북쪽 40㎝지점에서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 2발이 동시에 터진 것이다. 하 하사의 몸이 공중으로 뜨면서 2~3m 높이의 윤형철조망에 상체가 걸렸고 폭발의 충격으로 너덜너덜해진 두 다리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상황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운 현장은 수색팀장 정모(27) 중사가 장악했다. 통문 뒤쪽에 서 있던 정 중사는 대원들을 제치고 허 하사를 향해 대열 앞으로 뛰어나갔다. 410여 회의 수색작전 경험이 있는 정 중사는 적의 공격으로 판단해 “사주경계 철저”라고 외친 뒤 응급키트를 꺼내 먼저 하 하사를 지혈했다. 이어 “내가 경계를 할 테니 서둘러 후송하라”며 부대원들을 다그쳤다.

2차 폭발에도 낮은 포복 자세로 부상자 후송

수색팀장의 지시에 따라 박모(45) 원사와 의무병 박모(21) 상병이 양쪽에서 하 하사의 상체를 부축하고 김 하사가 뒤에서 하체를 손으로 받쳐들었다. 7시40분 박 원사와 박 상병에 이어 김 하사가 마지막으로 출입문을 다시 넘는 순간 남쪽 25㎝지점에 묻혀있던 지뢰를 밟았다. 폭발 충격에 3명 모두 튕겨져 나가 쓰러지면서 잠시 정신을 잃었다. 폭발현장과 2㎞ 떨어진 백학관측소(OP)에서 촬영한 열영상감시장비(TOD) 화면에는 지뢰폭발로 흙먼지가 10m 이상 하늘로 치솟는 장면이 고스란히 포착됐다.

특전사 출신인 김 하사는 오른쪽 발목이 절단됐지만 거듭되는 위기상황에 통증을 호소할 겨를이 없었다. 그 사이 전방경계를 하고 있던 정 중사가 달려와 김 하사를 안전한 곳으로 끌어냈고, 박 원사와 박 상병도 정신을 차린 뒤 다시 출입문으로 뛰어가 쓰러져 있는 하 하사를 안아 들었다.

이때 장병들은 모두 포복자세를 취했다. 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판단에서다. 장병들은 김 하사를 대피시킬 때도 낮은 자세로 신중하게 이동했다. 나머지 장병들은 출입문 남쪽 경사진 둔덕에서 총기를 북쪽으로 겨냥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리 군 수색대원 2명에게 중상을 입힌 지뢰폭발사고는 군사분계선(MDL)을 몰래 넘어온 북한군이 파묻은 목함지뢰가 터진 것으로 조사됐다. 국방부는 10일 브리핑에서 통문과 횡보 사이 14cm 공간이 있어 북한군이 통문 남쪽에 진입, 목함지뢰를 매설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진은 합참이 공개한 사고현장 모습. 합참 제공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리 군 수색대원 2명에게 중상을 입힌 지뢰폭발사고는 군사분계선(MDL)을 몰래 넘어온 북한군이 파묻은 목함지뢰가 터진 것으로 조사됐다. 국방부는 10일 브리핑에서 통문과 횡보 사이 14cm 공간이 있어 북한군이 통문 남쪽에 진입, 목함지뢰를 매설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진은 합참이 공개한 사고현장 모습. 합참 제공

● 다리 절단된 부팀장 “다른 전우들은요?”

2차례의 폭발 후 GP 지원병력 10명이 도착했다. 1차 폭발 이후 15분이 지난 7시50분 부상자 2명을 들것에 실었다. 걸어서 20분 거리의 GP까지는 들것으로 후송하고 GP에서 GOP(DMZ 밖 일반초소)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했다. 부상자는 헬기로 사고발생 1시간25분 만에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했다.

지뢰폭발사고조사단장인 안영호 준장이 추진철책 통문 북쪽에 앉은 자세로 북한군이 철책을 넘지 않고 통문 남쪽에 지뢰를 매설할 당시를 재연해 보이고 있다. 파주=국방부 사진공동취재단
지뢰폭발사고조사단장인 안영호 준장이 추진철책 통문 북쪽에 앉은 자세로 북한군이 철책을 넘지 않고 통문 남쪽에 지뢰를 매설할 당시를 재연해 보이고 있다. 파주=국방부 사진공동취재단

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후송돼 치료를 받은 김 하사는 깨어나자마자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요?”라고 재차 물었다. 합참의 고위당국자는 “상당히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누구 하나 숨거나 소극적으로 작전에 임한 인원 없이 훈련한 대로, 사명감을 갖고 전우를 구출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사고 직후 DMZ내 155마일 전역에 걸쳐 우리 장병들의 수색로에 대한 지뢰탐지작업을 실시했다. 하지만 북한이 추가로 매설한 지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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