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어렵게 구해 1년 3개월 만에 떠난다, 왜?

입력
2015.07.2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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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스펙'은 점점 좋아지는데 기업 근로 여건은 제자리 걸음

조직문화 안 맞으면 과감히 이직… 청년 취준생 35%가 "공무원 준비"

중공업 분야 대기업의 정규직 사원인 김창호(27ㆍ가명)씨는 입사한 지 정확히 1년 만인 다음 주에 회사를 그만두고 자동차 부품회사로 이직한다. 김씨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게 구한 일자리지만 막상 취업 하고 보니 전망도 그다지 밝은 것 같지 않고, 거대한 조직 속에서 개성을 잃고 허드렛일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면서 “취업을 하고 나면 사회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에 예전엔 몰랐던 더 나은 직장을 찾아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 취업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어렵게 구한 직장을 버리고 새 직장을 찾아 나서는 청년들 또한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우선 취업 가능한 일자리를 구했다가 기회가 생기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거나,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스마트 세대’가 보수적 조직문화에 염증을 느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및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첫 일자리를 그만 둔 청년층(15~29세)의 첫 일자리 평균 근속 기간은 14.6개월로, 첫 취업에 걸리는 평균 소요 기간(11개월)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18.2개월, 2010년 16.0개월이던 평균 근속기간은 매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취업 유경험자 중 첫 일자리를 그만 둔 비율(63.3%) 역시 지난해보다 1%포인트 늘었다.

이처럼 첫 직장 근속 기간이 짧아진 것은 치열한 취업 경쟁으로 평균적인 ‘스펙’은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기업의 근로 여건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높은 학점, 자격증, 해외 연수 등 높은 스펙을 갖추고 어렵게 직장을 구했지만 직장 생활이 기대에 못 미치다 보니 더 나은 직장을 찾아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권태희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이제 스펙이라는 표현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청년들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됐고, 이들은 예전에 비해 일과 사생활의 균형을 훨씬 중시한다”면서 “그런 청년들이 직장의 조직 문화가 자신과 맞지 않다 싶으면 과감하게 그만 두고 새 일자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번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이 일자리를 그만 둔 가장 큰 사유는 보수와 근로시간 등 ‘근로여건 불만족’이 47.4%로 절반에 육박했다.

안정적 직장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하늘을 찌를 듯한 공무원 취직시험 열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올해 청년층 취업시험 준비자 중 무려 34.9%가 일반직 공무원 시험(5급 행정고시 및 교원 임용시험 제외)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28.0%)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반면 일반기업체 취업시험을 준비하는 비율은 지난해(25.5%)보다 크게 줄어든 18.9%에 그치면서 급기야 기능분야 자격증 등을 준비하는 비율(22.9%)에 이은 3위로 밀려났다. 그 밖에는 고시 및 전문직(9.8%) 언론사 및 공기업(8.5%) 교원 임용(5.1%)순이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휴학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대졸자는 40.3%로 나타났다. 남자의 경우 병역 기간이 짧아지면서 평균 휴학 기간이 31.4개월로 지난해보다 0.7개월 줄어들었지만 여자는 16.4개월로 오히려 0.4개월 늘어났다. 특히 여자의 경우 학비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휴학을 했다는 비율이 23.4%(지난해 21.5%)에 달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여선애 인턴기자(서강대 프랑스문화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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