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씀씀이 손볼 곳 투성이

입력
2015.03.10 04:40

본보, 예산·재정 전문가 10명 설문, 7명이 "편성·집행·검증 문제 많다"

복지확대 시대에 맞춰 구조조정, 한정된 재원 합리적 재분배 필요

#. 저출산ㆍ고령화 기본계획이 시작된 2006년부터 작년까지 정부가 쏟아 부은 이 분야 예산은 모두 123조원에 달한다. 특히 저출산 분야에 절반 이상(약 67조원)이 투입됐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2005년 1.08명→2014년 1.21명)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저출산 예산지출의 성과를 거두려면 부처간 유기적 협력과 민간참여 독려와 더불어 보육재정을 지금보다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필수 지출분야 선택과 집중)

#.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예산 비중은 세계 1위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연구성과의 양적 팽창에 비해 논문 1편당 피인용 횟수 저조, 기술무역수지 적자 등 질적 성장은 미흡했다”고 평가한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눈먼 돈을 막으려면 성과와 연동시킨 예산배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예산누수 방지)

#. 유엔에서 공공행정 분야 대상까지 받은 디브레인(dBrainㆍ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은 정부의 수입부터 예산 편성ㆍ집행, 결산 등 국가재정의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통합재정정보시스템이다. 하지만 여전히 예산당국 등 일부 정부부처 외엔 국회는 물론, 일반국민의 접근은 제한되고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나라 예산을 잘 쓰려면 철저한 사후 검증이 필수인데 애초 공개를 목적으로 개발된 시스템을 계속 막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비판했다.(시스템 개선)

본격적인 복지수요 확대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의 현 예산구조에도 시급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추가 재원을 마련하려는 노력 못지 않게 당장 한정된 재원을 합리적으로 재분배하고 이를 정착시킬 제도를 갖추는 것도 절실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지출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선행돼야 장기적으로 한국형 복지의 가계부를 다시 쓸 수 있다고 조언했다. *관련기사 4, 5면

9일 한국일보가 국내 예산ㆍ재정 분야 전문가 1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7명이 “최근의 복지요구 급증 현실에 비춰 봤을 때, 현행 우리의 예산 편성ㆍ집행ㆍ검증 구조에는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2명은 “판단하기 어렵다”고 답했고, “현 구조가 괜찮다(불가피하다)”는 응답은 1명에 그쳤다.

“예산 포트폴리오 다시 짜야”

많은 전문가들은 우선 현행 예산의 합리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복지지출 수준이 여전히 경제수준에 비해 부족한 만큼 총량의 확대보다 효율적인 지출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구개발(R&D), 사회간접자본(SOC), 중소기업, 농어촌 지원 등을 아우르는 경제사업 예산은 지금의 효과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다이어트가 가능한 대표적인 분야로 꼽혔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국방비와 더불어 경제사업 예산 비중이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다”며 “국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과도한 경제사업은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라고 말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SOC 예산의 대부분이 지역개발 예산인데, 국회의원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구조조정이 가로막혀 있다”고 꼬집었다.

줄줄 새는 예산의 구멍만 막아도 큰 효과를 볼 것이란 의견도 높았다. 이른바 누수ㆍ중복 예산 방지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정부가 제출한 올해 예산안 가운데 다수의 중복 예산을 지적했다. 가령, 노인ㆍ장애인 돌봄 사업의 경우 노인돌봄종합 및 노인돌봄기본서비스, 가사간병방문도우미, 장애인활동지원(이상 보건복지부), 취약농가인력지원(농림축산식품부) 등 여러 유사사업을 연계ㆍ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대표공약으로 8조3,000억원이 배정된 ‘창조경제 R&D’ 분야는 “정책의 우선순위 강조보다 효율적 투자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벤처ㆍ중소기업 지원 예산안 중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기술혁신개발사업 및 중소기업상용화기술개발사업은 실효성이 높지 않은 사업으로 꼽혔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현재 예산구조는 기업이 스스로 할 수 있는 R&D조차 국가에 기대게 만드는 측면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또 지원대상을 사람보다 산업ㆍ지역별로 정하는 접근방식 탓에 생기는 비효율도 적지 않다. 이영 한양대 교수는 “농어촌 전체를 지원하다 보면 일부 부농들까지 혜택을 본다”며 “농어촌의 저소득층에 지원을 집중하는 식의 혜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체 예산의 30%를 차지하는 복지 분야 내부의 비효율 문제도 집중 거론됐다. 취약계층에 대한 부조와 달리, 보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는 최소한의 수혜자 부담 원칙이 적용돼야 지속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부처간 유사 사업이나 한 명의 수혜자에게 여러 혜택이 집중되는 ‘복지 중복’의 문제 ▦한해 수천억~10조원까지 추산되는 ‘복지 누수’ 현실도 시급한 개선 대상이다. 최성은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번 지원대상으로 선정되면 주거비부터 핸드폰 보조금까지 각종 혜택이 한 사람에게 몰리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미래 재정지출 시스템 재검토 해야”

전문가들은 복지시대를 맞아 국가재정 지출 시스템의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예산에 대한 전략 재정립이다. 이영 교수는 “아직도 복지지출과 관련해 실험의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정말 필요한 부분이 늘어나기 보다는 이것 저것 시도해보는 측면이 강하다는 얘기다. 홍승현 조세재정연구원 재정지출분석센터장은 “복지 확충에는 수혜의 대상자를 늘릴지, 지원규모를 늘릴지 두 가지 측면의 방법론이 있는데 우리는 무작정 둘 다 잘하자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박진 교수는 예산 편성과정의 후진적 문화를 지적했다. “장관의 임기가 짧다 보니, 사업의 성과보다 ‘일단 따고 보자’는 식으로 돈부터 챙겨야 칭송을 받는 구조적인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김우철 교수는 ‘전년 대비 더하기 빼기’ 식의 예산 책정 패턴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실제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일본은 2009년 대대적인 ‘재정사업 구분’ 작업을 통해 329개 예산을 원점에서 재검토한 결과, 전체 예산의 3.6% 규모의 재원을 새로 마련했다. 당시 일본 정부의 요구안 중 원안대로 수용된 것은 4.6%에 불과했다. 20개 중 19개를 뜯어고쳤다는 얘기다.

늘어나는 복지지출이 소득분배 개선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한계도 점검 대상이다. 전병목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09년 이후 한국의 복지지출 증가가 소득분배지표인 지니계수를 개선하는 정도가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며 “복지지출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박진 교수는 “재정건전성을 우선해야 할 예산당국이 요즘은 경제활성화를 먼저 외친다”며 “장기적으로 예전의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처럼 예산기능을 별도 부처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종=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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