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변 부른 불법 바비큐장… 왜 10년 넘게 적발 못했나

입력
2014.11.1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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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널빤지로 구성된 바비큐장, 화재 날 가능성 아주 컸지만 담양군은 언제 지었는지도 몰라

소방서의 특정대상물 포함 불구, 점검 보고서엔 "양호"로 평가

"당국의 안전불감증이 만든 사고"

16일 오전 전남 담양의 펜션 바비큐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15일 저녁 이곳에서 발생한 화재로 나주의 D대학 패러글라이딩 동아리 학생과 졸업생 등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담양=연합뉴스
16일 오전 전남 담양의 펜션 바비큐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15일 저녁 이곳에서 발생한 화재로 나주의 D대학 패러글라이딩 동아리 학생과 졸업생 등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담양=연합뉴스

15일 10명의 사상자(4명 사망ㆍ6명 부상)를 낸 전남 담양의 H펜션 화재 사고는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에 빠진 관리 당국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불이 난 펜션 내 편의시설인 바비큐파티장과 공동취사장은 건축물 대장에도 없는 불법 시설물이었지만 담양군은 10년 넘게 위생점검을 하면서도 이런 사실을 적발하지 못했다. 소방당국도 해당 시설에 대한 안전 점검이 이뤄졌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15일 오후 9시 40분쯤 담양군 대덕면 매산리 H펜션 내 바비큐장. 나주의 D대학 패러글라이딩 동아리 소속 재학생과 졸업생 등 17명이 바비큐 숯불그릴이 설치된 원형 식탁 4개 중 2곳에 나눠 앉아 삼겹살을 구워먹던 중 갑자기 한 식탁에서 ‘펑’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이날 동아리 선후배들이 패러글라이딩 훈련을 마치고 숙소인 펜션으로 이동해 술을 곁들인 회식을 시작한 지 2시간쯤 지난 시점이었다.

불은 천장으로 번져 순식간에 바비큐장(33㎡)을 덮쳤고 ‘ㄱ’ 자 형태로 이어진 공동취사장과 또 다른 바비큐장도 집어 삼킨 뒤 50여분 만에 진화됐다. 처음 불이 난 바비큐장 출입구 쪽에선 류모(40)씨 등 졸업생 3명과 재학생 고모(18)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누군가 뜨겁게 달아오른 구이판을 식히려고 물을 부은 게 숯불, 고기기름과 반응하면서 불꽃이 천장의 억새에 옮겨 붙어 확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불이 난 바비큐장은 바닥은 나무, 벽은 안쪽과 바깥쪽에 널빤지를 덧댄 샌드위치 패널, 천장은 억새로 엮은 발을 얹어 놓아 가연성이 높았다. 이처럼 바비큐장 등은 화재 유발 가능성이 매우 컸지만 관리 당국의 안전의식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실제 2005년 5월 숙박시설(여관)로 허가를 받아 영업을 시작한 H펜션의 건축물 대장엔 바비큐장과 공동취사장 등은 등재돼 있지 않은 불법 시설물이었지만 담양군은 언제 지어졌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해당 펜션을 위생 점검 대상으로 지정해 10년 넘게 매년 두 차례씩 위생 점검을 하면서도 LP가스ㆍ전기시설 등을 갖추고 취사행위가 이뤄지는 공동취사장 등에 대한 불법행위를 적발한 건 2011년 ‘음용수 수질 부적합’ 사례 한번뿐이었다.

불법 시설물에 대한 관리 감독은 신경도 쓰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담양군 관계자는 “사실 불법 시설물에 대한 외부 신고나 고발이 접수되지 않으면 실태를 모를 수밖에 없다”며 “H펜션의 공동취사장 등에 대해서도 불법 시설물 신고ㆍ고발이 없어 철거 등 행정처분을 내리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화재 안전사고 위험에 무신경하기는 소방 당국도 마찬가지였다. H펜션은 담양소방서가 화재 예방ㆍ경계를 위해 지정해 놓은 관내 4,000여 개에 달하는 특정소방대상물에 포함돼 있다. 소방서 측은 이에 따라 지난해 8월 H펜션에 대한 소방특별조사를 실시한 뒤 점검 결과 보고서엔 ‘양호’라고 평가했다. 당시 점검은 비치된 소화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육안으로 대충 훑어보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서 측은 “H펜션은 소화기를 설치하면 되는 소방 대상물로 당시 조사에선 특이 사항이 없었다”며 “다만 바비큐장과 공동취사장에 대한 소방 점검이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화재 현장 감식 결과 바비큐장과 공동취사장에서 각각 1개씩의 소화기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소방 안전 점검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소방서 측이 불법 건축물에 대한 소방 안전 점검을 하고 양호 판정을 내렸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편 경찰은 화재 원인과 함께 담양군 관계자 등을 상대로 H펜션의 불법 시설물 설치 사실을 알고도 이를 묵인했는지, 소방 점검은 제대로 이뤄졌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키로 했다.

담양=안경호기자 khan@hk.co.kr 하태민기자 ham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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