官피아 뺨치는 '産피아 낙하산'

입력
2014.09.03 04:40

최근 3년간 퇴직 3명 중 2명 주거래기업 고위직에 재취업

부도 난 STX·동양 계열사에도 상당수가 감사 등으로 포진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현재 산업은행과 갈등을 벌이고 있다. 통상 내부출신이 선임됐던 IBK연금보험 등 자회사 사장(CEO) 자리를 산업은행에서 빼앗으려 한다며 외압 논란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 실제 기은은 7월 단행한 1,800여명의 원샷인사에서 자회사 CEO 인선이 청와대에서 늦어지면서 이들과 맞물린 부행장급은 인사에서 제외했다. 홍완엽 기은 노조위원장은 “산은 고위층의 입김이 청와대에 전달되면서 산은 부행장 출신을 기업은행 자회사에 내려 보내려 하고 있다”며 “주거래 기업 재취업도 모자라 여기까지 ‘산피아’(산업은행+마피아)가 와야겠느냐”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으로 정부부처 퇴직 관료들의 재취업이 어려워진 것과 달리 산업은행 퇴직자들은 여전히 주거래 기업 등으로 낙하산 취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3년 동안 산은 퇴직자 3명 중 2명이 이렇게 재취업에 성공해 금융권에선 “관피아 보다 더한 산피아”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이 산은에서 제출받은 재취업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현재까지 재취업한 산은 퇴직자 47명 중 31명(66%)이 주거래 기업 고위직으로 재취업했다. 감사가 13명으로 가장 많고, 대표이사(CEO)도 4명이나 된다. 올해만 해도 송도베스트타운개발 대표이사 등 4명이 주거래 기업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산업은행은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재취업 사유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 운영투명성 확보(20명) ▦투자회사의 경영 효율ㆍ투명성 확보’(3명) ▦구조조정업체 경영관리ㆍ가치제고(2명) 등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주거래 기업의 요청으로 재취업한 산은 출신은 고작 3명에 불과했다. 민 의원은 ““산은 출신이 주거래 기업이나 투자기업 임원으로 가는 것은 결국 부적절한 유착관계 형성 등 산은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에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 산은은 재계 서열 45위 기업 중 14곳(계열사 752개)의 주채무은행을 담당할 정도로 기업들에게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한 중소기업 임원은 “산은과 같은 배를 타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된다”말했다.

문제는 이런 산은 퇴직자들이 경영관리 효율화, 기업부실 방지 등의 역할은커녕 오히려 부실기업만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해 부도 사태를 맞은 STX그룹, 동양그룹 계열사에 산은 출신 상당수가 감사 등으로 재취업했지만 부실방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산은 전현직 임직원 10여명이 대출부실과 관련한 제재 절차를 받고 있다.

산은 퇴직자 재취업 문제는 이미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도 드러났다. 2008년~2012년 7월 산은 퇴직자 중 총 68명이 거래기업의 고위직으로 재취업했는데, 이들은 산은이 해당 기업에 대출이나 투자를 한 날 전후로 3개월 이내에 재취업했다는 것.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관피아 척결을 주장하는 이유는 재취업하는 기관에서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인데, 산은도 정책금융을 실행하고 있는 기관이라 재취업자들이 주거래 기업 등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식의 문제 소지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정부차원에서 이런 부분을 모니터링하고 방지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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