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가 의혹 키우는 세월호 당시 대통령 행적

입력
2014.08.05 20:00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정쟁의 깊은 수렁 속에 빠져들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세월호 국정조사 증인채택 등에서 쟁점을 적극적으로 풀 생각은 않고 여야는 남 탓 핑퐁게임만 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가라앉는 선내에서 구조만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현장의 해경은 진입할 생각도, 퇴선 명령도 않는 사이 청와대를 비롯한 지휘부는 상황도 모른 채 허둥지둥하면서 발생한 유례없는 대규모 재난이 그냥 잊혀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크다. 참사를 부른 재난대응시스템의 부작동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지 못한 채 피상적 진단과 처방만 이어져 향후 똑같은 사건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정황은 온갖 의혹이 일고 있는 참사 당일(4월16일) 대통령 행적을 둘러싼 청와대와 여당의 방어막에서 여실하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처음 서면보고를 했던 오전 10시부터 대통령이 중앙재해대책본부 방문을 한 오후 5시까지 대통령 행적이 문제다. 이에 대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7일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해 “모른다”고 대답했다. 당일 박 대통령은 모두 24차례 서면ㆍ전화 보고를 받았다. 반면 당일 오후부터 현장 상황의 심각성이 드러나는 데도 대면보고도 없었고, 대통령 주재 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오후 5시15분 중대본을 방문했을 때 관계자에게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거나 구조하기가 힘이 드느냐”고 물었다. 당시는 당국도 300여명의 실종자 대부분이 선내에 갇혀 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던 때여서 현장 상황과 한참 동떨어진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대통령의 상황인식 괴리를 가져온 서면ㆍ유선보고 내용이 무엇인지, 시시각각 상황이 긴박해지는데 대통령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마땅하다. 반드시 규명돼야 하는 이유다.

국정조사청문회에 김기춘 실장과 대통령 동선을 관리하는 정호성 청와대 부속1실장이 출석해 의문에 대답하라는 야당의 요구는 국민의 자연스러운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 국조특위 조원진 간사는 “대통령의 사생활”이라 하고, 이완구 원내대표는 “국가안보 문제”라며 야당의 요구를 무리한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청와대의 태도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증인채택 문제로 4일 열리기로 돼 있던 국정조사가 공전하고 있는데 남의 일인 양 하고 있다. 국정의 최고책임을 맡고 있는 기관이라면 대통령 행적에 대한 의혹을 밝혀 국민을 납득시키고, 꼬인 매듭을 풀어 국회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정상이다. 인터넷, 증권가 찌라시, 심지어 일본의 우익신문에까지 7시간의 행적이 ‘대통령의 은밀한 사생활’로 부풀려져 망신을 당하고 있는 것도 결국 청와대가 자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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