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누적된 병영 악습, 김관진 실장 책임도 크다

입력
2014.08.05 20:00

박근혜 대통령이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ㆍ사망 사건에 대해 엄중히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모든 가해자와 방조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해 잘못 있는 사람들은 일벌백계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고강도 문책 방침은 이번 사태를 둘러싼 심상치 않은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군대판 세월호’에 비유하며 입영거부 운동까지 거론하고 있다. 미흡하게 대응할 경우 군에 대한 불신을 넘어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귀한 자녀를 잃은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담하다”며 유가족에 대한 유감만 표시한 점은 아쉽다. 이번 사건이 미친 파장을 감안하면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국민들에게 포괄적인 사과의 뜻을 밝혔어야 한다.

이번 사건의 책임 소재와 관련해서 우선 군의 은폐ㆍ축소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육군 지휘계통과 군 수뇌부 어느 선까지 상황을 보고 받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가려내야 한다. 윤 일병에 대한 야만적인 가학행위의 구체적 내용을 알고도 공개하지 않았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면키 어렵다. 권오성 육군참모총장과 당시 국방부 장관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자세한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 실장은 윤 일병 사망 나흘 후 ‘특별 군 기강 확립 대책회의’를 주재했고, 권 총장은 이어 주요지휘관 회의를 화상으로 열었다. 김 실장과 권 총장이 가혹행위의 실상을 몰랐다는 주장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권 총장이 어제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와 관계없이 진상조사는 진행돼야 한다.

윤 일병 사건 은폐의 직접적인 책임이 아니더라도 김 실장이 국방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인 일어난 각종 사건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2011년 4명이 숨진 김포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때 김 장관은 재발 방지를 다짐했으나 지난 6월 다시 22사단에서 5명이 숨진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김포사건 발생 후 국가인권위원회가 1년여 실태조사를 벌여 군 인권법 제정과 병사 계급별 대표로 구성된 ‘병영생활 협의체’ 구성 등을 권고했으나 김 장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본적 대책 마련에 소홀한 결과가 22사단 총기 사건과 이번 윤 일병 사망사건으로 이어진 것이다. 22사단 총기 사건에서는 병영관리 문제뿐 아니라 부실한 초동 대처와 거짓 발표 등 군의 한심한 실상이 여실히 노출됐다. 그런데도 사단장만 문책했을 뿐 국방 장관을 겸직하던 김 실장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김 실장은 합리적 병영 관리와 정예강군 육성 실패의 궁극적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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