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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오랜만에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날 내 발길을 집밖으로 내몬 것은 뜻밖에도 정전 사태였습니다. 이유인즉, 아침에 동네 입구에서 사고가 있었던 것입니다. 빗물관 보수 공사를 하러 드나들던 포크레인이 전봇대를 건드려 쓰러뜨리는 바람에 전깃줄이 끊어져, 전기와 함께 통신도 한꺼번에 끊기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지요(도시에서는 통신 케이블이 지하에 따로 매설되어 있지만, 우리 집은 시골에서도 변두리에 있기 때문에 통신선이 전봇대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고 현장에 가서 문의했더니, 전기가 복구되려면 오후 두어 시, 통신까지 복구되려면 네다섯 시는 되어야 하리라는 것입니다. 나는 집에서 컴퓨터로 일하기 때문에 전기와 통신이 끊기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기야 이런 날은 어디 전시회나 영화관에라도 다녀온다든지,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그렇게 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사람의 심리란 참 묘한 것이어서, 억지로 주어진 이 휴일이 여느 휴일과는 다르게 느껴지던 것입니다. 하루를 덤으로 얻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평소와는 다르게, 좀 더 뜻있게 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깊이 궁리할 것도 없이 가벼운 배낭 하나 짊어지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행선지는 노꼬메오름. 이 오름은 우리 집에서 남쪽 방향으로 한라산 중턱에 우뚝 솟아 있어서, 고개만 들면 한 눈에 가득 들어옵니다. 볼 때마다 언제 한번 다녀와야지 마음만 먹으면서 차일피일해 왔는데, 마침내 그곳을 찾아가게 된 것이지요.

멀리서 바라보면 오름의 양쪽 봉우리가 이어지는 능선의 모양이나 한 쪽으로 툭 터져 나온 듯한 굼부리(분화구)의 형세가 실로 인상적입니다. 주차장에서 들머리까지는 목마장을 가로질러 가게 되는데, 방목하는 조랑말들이 여기저기서 풀을 뜯다가 고개를 들어 반겨주는 모습도 한 폭의 정겨운 그림입니다. 등산로에 들어서면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의 터널이 이어지고, 때로는 등허리가 땀에 젖을 만큼 가파른 오르막도 거쳐야 합니다. 그렇게 숲길을 지나노라면 어느 순간 갑자기 숲이 끝나고 시야가 확 트입니다. 등성이에 다다른 것이지요. 조릿대가 지천으로 깔린 산길을 허위허위 걸어 정상에 오르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에 눈이 시리고 정신마저 아득해집니다.

오후 네 시쯤 산을 내려와, 이웃 마을의 단골식당에 들러 이른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전기는 들어와 있었지만, 통신은 다음날 오전에나 복구된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켰더니 세상은 여전히 어수선하고 시끄럽더군요. 텔레비전을 얼른 끄고 나자, 이 참에 전기도 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위치를 내리고, 플러그까지 다 뽑아버렸습니다(어쩔 수 없이 냉장고는 빼고). 어둠이 밀려든 집안에 촛불을 켰습니다.

누런 불빛에 어른거리는 풍경을 바라보노라니 소싯적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장지문 이마에 백열등을 달아 방 두 칸을 비추던 시절. 그 전깃불마저 걸핏하면 나가는 바람에 촛불을 켜고, 벽에 비친 그림자를 응시하거나 문풍지를 울리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지요. 그 은은한 빛, 그러니까 어둠과 밝음의 어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현실과는 다른 세상, 상상으로 빚어낸 세상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잘 만들어진 판타지나 동화책이 없어도 우리는 그렇게 또 다른 세상을 꿈꾸면서 유소년의 한때를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지요. 문득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아직도 우리들 가슴속에 꿈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아늑하고 안온한 느낌 속에서, 종종 이런 날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기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할 만큼 우리는 그렇게 기계 문명에 얽매여 있습니다. 플러그를 뽑는 것만으로도 그 문명의 손아귀에서 나의 삶을 해방시키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김석희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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