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열전] (13) KBS 윤석호PD

입력
1999.08.02 00:00

수도권의 새로운 문화벨트로 정착해가는 경기 양평의 한 분위기 좋은 카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29일 오후 KBS 새 미니시리즈 「초대」 타이틀 촬영이 한창이다. 『아이구 너무 짧아요. 자 갈께요』 고래고래 소리치는 다른 PD와 다르다. 유달리 조용한 큐사인. 영상 시인이라고 불리는 KBS 윤석호(43) PD다. 그와 그의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연상되는 사람. 뛰어난 영상미로 잘 알려진 누벨 이마주의 대가 「그랑 블루」 의 감독 뤽 베송과 「블루」 「화이트」 「레드」의 키에슬로프스키.이미지와 스타일, 그리고 지순한 내용. 이것들은 윤PD의 연출 세계가 그리는 「삶에 대한 기대, 사랑에 대한 기대, 사람에 대한 기대」를 위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들이다.

유년시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창작의 기쁨을 알았다. 건국대 국문과에 진학했다. 84년 짧은 시간에 이미지와 어우러진 메시지를 담는 광고의 매력에 끌려 제일기획 PD로 들어갔다. 하지만 PD의 의도보다 광고주에 의해 뜯어 고쳐지는 풍토를 견디지 못해 1년만에 그만뒀다.

그리고 KBS에 입사. 드라마를 하고 싶었지만 맡은 분야는 쇼·오락. 「쇼86」 이남기 PD 밑에서 깔끔하고 깨끗한 연출을 배웠다. 광고와 쇼 PD, 결코 그의 인생에서 낭비는 아니었다. 예쁘고 아름다운 그의 작품 영상에 끝임없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미지와 스타일에 치중하는 편입니다. 간결한 이미지로 승부하는 광고와 색상의 신비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쇼를 하면서 많은 걸 배웠지요. 드라마 할 때 참 도움이 됩니다』 「초대」 주연을 맡아 복귀한 이승연이 지나가다 한마디 던진다. 『윤감독님은요. 아이같은 사람입니다. 화도 못 내고 그래요』 이승연의 말처럼 그는 아이처럼 천진하다. 그리고 여성처럼 섬세하다. 『틈틈이 쇼핑을 해요. 거기서 색상도 참고하고 스타일도 배우지요. 옷은 제가 골라 입습니다』

93년 그는 꿈에도 그리던 연출을 한다. 드라마 게임 「인생은 도돌이표」 라는 단막극. 영상이 아름다워 주위에서 칭찬을 받았다. 곧 바로 이병헌 고소영 박소현이 처음 세상에 얼굴을 내민 「내일은 사랑」 청춘 드라마를 만들었다. 이어 류시원이 데뷔한 「느낌」, 명세빈이 드라마에 처음 출연한 「순수」를 만들며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여기서 그의 드라마의 한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대사는 좀 손해봐도 신인들의 풋풋한 본래 이미지가 나오는 매력이 있어 신인들을 가급적 많이 기용합니다』 방송가에선 그의 신인 캐스팅이 거의 동물적 감각에 가깝다고 말한다.

9일부터 방영되는 「초대」 주연급에도 두명의 남녀 신인이 있다. 한번도 드라마에 출연해 본 적이 없는 김민과 지진희다.

96년 「컬러」 연작 미니 시리즈는 한국 드라마상 가장 뛰어난 영상 색상을 구사했다는 평을 받았다. 파란색의 자유와 분방, 노란색의 광기와 열정, 핑크색의 야릇함과 은은함이 「컬러」에서 살아 움직였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영상을 추구한 그에게 비난도 쏟아진 적이 있다. 『97년 이승연과 김희선 주연의 「웨딩드레스」였지요. IMF 사태로 온 국민이 시름에 젖어 있는데 화려한 외제차가 동원되고 먹을 것 걱정 안 하고 사는 모습만 보여줘서 호되게 혼났지요. 반성했어요. 드라마와 사회는 함께 가는 것인데 말입니다』

노총각이다. 『결혼을 못하는 부류는 이상주의자이거나 이기주의자입니다. 저는 두가지 다 가지고 있어 결혼을 아직 못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독신주의자는 아닙니다』

그의 꿈이자 희망. 『설레임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겁니다. 설레임이 없다면 얼마나 인생이 쓸쓸하겠어요』 /배국남기자 knbae@hk.co.kr

◆주요 연출작(KBS)

93년 단막극 「인생은 도돌이표」

93년 주간극 「내일은 사랑」

94년 미니시리즈 「느낌」

96년 미니시리즈 「컬러」

97년 미니시리즈 「프로포즈」

97년 주말극 「웨딩드레스」

98년 미니시리즈 「순수」

99년 단막극 「은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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