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15일(현지시간) 휴전안에 합의해 15개월간 이어진 가자지구의 포성이 마침내 멈추게 됐다. 3단계에 걸쳐 인질·수감자를 맞교환하고,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철수해 전쟁을 완전히 끝내겠다는 구상이다. 2023년 10월 7일 개전 후 466일 만의 휴전안 타결이자, 발효 시점 19일을 기준으로 하면 전쟁 개시 470일 만에 양측이 총구를 내려놓는 셈이다.
다만 '영구 휴전'으로 나아갈지는 미지수다. 특히 하마스 궤멸을 목표로 하는 이스라엘이 국내 정치 상황 등을 이유로 휴전 합의를 파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세계의 화약고' 중동의 긴장 완화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20일)으로 격변을 코앞에 둔 국제 정세에 또 하나의 중대 변수가 추가됐다.
로이터통신·AP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이날 가자지구 휴전안에 잠정 합의했다. 협상 중재국인 미국과 이집트, 카타르가 이 소식을 먼저 알리며 "휴전은 19일 발효된다"고 발표했다.
이번 휴전은 개전 이후 두 번째다. 전쟁 발발 48일 만인 2023년 11월 24일 '1차 교전 중단 및 인질 석방'이 이뤄지긴 했으나, 이는 일주일 만에 종료됐고 가자지구는 다시 전쟁의 포화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이번 전쟁으로 숨진 팔레스타인인 수는 4만6,707명(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에 달하며, 이스라엘 측에서는 1,2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구체적인 종전 로드맵이 시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단계로 진행되는데, 우선 1단계로 6주간(42일) 휴전이 이뤄진다. 하마스는 인질 33명(여성과 미성년자, 50세 이상 남성)을 순차적으로 석방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민간인과 군인을 통틀어 인질 94명이 가자지구에 남은 것으로 파악하는데, 이 중 생존자는 60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인 수감자를 풀어준다. 하마스가 석방하는 민간인 인질 1명당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30명, 이스라엘 여성 군인 1명당 50명을 돌려보내는 조건이다. 로이터는 "1단계에서 석방되는 팔레스타인인 수감자는 990~1,650명"이라고 추산했다.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군 병력은 점진적으로 철수한다. 휴전 기간 동안 필라델피 회랑(가자지구와 이집트 사이 경계 지역)에는 계속 주둔하지만,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가르는 넷자림 회랑에선 철수한다. 인도주의적 물자도 가자에 반입된다.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가자 남부로 피란을 떠난 주민들 역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다음 달 2일부터는 '2단계 휴전'에 들어간다. 이스라엘군의 완전 철수를 논의하고 이행하는 게 핵심이다. 또 하마스는 젊은 남성 등 생존자 인질을 모두 석방한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풀어준다. 3단계 휴전은 전쟁의 완전 종식으로, 이미 사망한 인질 시신이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된다. 국제사회의 감시 아래 가자지구 재건 작업도 시작된다.
미국을 비롯해 중재에 나섰던 이집트와 카타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마침내 휴전 협상 타결 발표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인질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가자지구 내 무고한 민간인의 고통도 끝날 것"이라고 밝혔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1년 이상 힘든 노력 끝에 합의에 도달했다"고 축하했다.
국제사회도 한목소리로 환영했다. 다만 중동 정세 급변에 따라 각국 셈법은 복잡해질 전망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갈등 관계인 이란, 레바논 등은 대외 정책 전면 개편이 불가피해진다.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트럼프 2기 미국 정부의 중동 정책은 최대 변수다.
순조로운 휴전 이행은 이스라엘에 달려 있다. 영국 BBC방송은 "이스라엘의 목표는 하마스의 가자 통치능력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라며 "하마스는 세력이 약화됐지만 군사작전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총리실은 16일 휴전안 승인 표결을 앞두고 "하마스가 합의 일부를 파기하며 마지막 순간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를 철회하지 않으면 내각은 소집되지 않을 것"이라며 막판 기싸움을 이어갔다. 강경파 반발이 변수라는 얘기다.
가자지구에선 휴전 합의 기쁨도 잠시, 오히려 이스라엘군 공습이 더 거세지고 있다. 알자지라방송은 16일 "이스라엘군 폭격 속도가 두 배로 빨라졌다"며 "휴전 합의 후 가자 전역에서 최소 73명이 사망하고, 230명 이상이 다쳤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