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백악관을 떠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 ‘과두제(Oligarchy)’가 출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과두제는 소수 우두머리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일종의 독재 정치 체제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같은 초부유층이 권부 핵심에 포진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백악관 고별 연설에서 “오늘 미국에는 부와 권력, 영향력이 지나치게 집중된 과두정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 민주주의 전체와 우리의 기본적 권리·자유,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정말로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정 대상이 지목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국 뉴욕타임스는 “머스크 등 억만장자들이 4년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게 되는 차기 트럼프 행정부를 가리킨 언급”이라고 해석했다.
더불어 사실관계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이나, 원본과 현실을 조작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등이 과두 권력의 도구로 거론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퇴임하며 ‘군산복합체’(군부와 대기업으로 이뤄진 이익 공동체)의 위험성을 지적한 사실을 환기시킨 뒤 “‘기술산업복합체(tech-industrial complex)’ 부상 가능성을 똑같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인들은 눈사태같이 쏟아지는 잘못된 정보와 허위 정보에 파묻히고 있으며 이게 권력 남용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 시각에서 과두제에 의해 위축되는 대표적 분야가 기후변화 대응이다. 그는 “강력한 세력들은 우리가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취했던 조치들을 없애고 권력과 이익이라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견제받지 않는 영향력을 휘두르고 싶어 한다. 우리는 협박당해 우리 후손의 미래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트럼프 집권기 걱정은 이날 연설의 중심 테마였다. 트럼프 당선자가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여겨지는 제도를 흔들고 독재·전횡 기회를 노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지는 오래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의 권력 분립,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역사상 그 어떤 나라보다 오래, 거의 250년간 민주주의를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어떤 대통령도 재임 중 저지른 범죄로부터 면책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지난해 7월 보수 우위 대법원이 트럼프 당선자에게 부여한 광범위한 면책특권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연설 말미에 바이든 대통령은 부인 질 바이든 여사 및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특히 “카멀라는 역사적 부통령”이라며 “그와 (남편) 더그(엠호프)는 내게 가족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약 17분 길이인 이날 연설은 미국 동부 저녁 황금 시간대에 생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