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월 초짜'가 잠수 감독?... "우리 아들 같은 희생 더 없어야"

입력
2025.01.14 20:30
현대미포 22세 하청 잠수사 사망 보름째
'무경력'·'무자격'인 안전감시인 배치 정황
동료 잠수사도 경력 1개월 불과한 '초보'


기범이 아빠입니다. 기범이가 영안실에 안치된 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하청업체인) 대한마린산업은 제대로 된 사죄 없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원청인 HD현대미포는 하청업체 등 뒤에 숨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가 죽어서라도 올바르고 거리낌 없이 편안한 곳으로 찾아갈 수 있게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14일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앞, 고(故) 김기범씨 부친

지난해 12월 30일 대형 조선소에서 홀로 잠수 업무를 하다가 사고로 숨진 22세 하청노동자 고(故) 김기범씨 유족들이 "기범이 같은 젊은 친구들이 더는 희생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처벌을 해달라"며 원·하청 업체를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기범씨 아버지는 14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족은 황망한 가운데 가슴이 찢어진다"며 기업들의 무책임함을 비판했다. 그는 "산업잠수 경력이 6개월(기범씨), 1개월(동료 작업자)로 짧은 잠수사들에게 '알아서 작업하라'고 시키고 방치한 원·하청 회사들이 이제는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데 몰두한다"고 말했다. 위험 상황을 감독하고, 사고 발생 시 대처해야 하는 하청 소속 감시인(텐더) 역시 잠수 관련 경력이 1개월뿐인 '초짜'로 알려졌다.

기범씨의 삼촌은 지난해 5월 전남 영암의 HD현대삼호 작업장에서 일하다 숨진 '7개월 차 잠수사' 이승곤(당시 22세)씨 사건을 언급하며 애통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 기범이 같은 젊은 친구들이 더는 희생되지 않게, 억울한 유족들이 생기지 않게끔 제대로 된 조사와 재발 방지 노력, 엄중한 처벌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곁을 지키던 기범씨의 할머니는 기자회견이 끝날 무렵 감정이 북받치는 듯 "우리 기범이 살려 줘, 제발 다 필요 없어. 살려 줘. 제발 좀 도와주세요"라며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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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뿐 아니라 1차 때도 사실상 단독 입수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 봐도 원·하청 업체의 안전관리에는 구멍이 수두룩했다. 바닷속 배 밑은 매우 어둡기에 고숙련 잠수사들이 '2인 1조' 작업을 해도 안전을 100% 담보할 수 없고, 그래서 감시인(텐더)의 오랜 경험과 기민한 대처가 중요하다는 게 산업 잠수사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하지만 사고 당일 현장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건 입사 3개월 차이자 관련 경력을 6개월 쌓은 기범씨였다. 입사 1개월 차인 동료 잠수사는 레저 잠수 경력만 있을 뿐 산업 잠수 경험은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사고 당일에도 "배우는 차원에서 기범씨를 따라 들어갔다"고 한다.

또 '2인 1조'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던 사고 당일 1차 잠수(오전 10시 14분부터 약 1시간) 때도 기범씨 혼자 방치됐던 순간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동료 잠수사가 어두운 바닷속에서 길을 잃어 먼저 육상으로 나온 까닭에 약 30분간은 기범씨가 홀로 작업했던 것이다. 기범씨는 이후 혼자 2차 잠수(오전 11시 28분)를 했다가 변을 당했다.

잠수 노동자의 안전을 지켜줘야 할 법망도 허술하다. 잠수사의 생명줄을 쥔 텐더의 자격 조건은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이 탓에 잠수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이 역할을 맡기도 한다. 대한마린에서 일했던 잠수사 A씨는 "다이버가 아닌 텐더가 배치되는 경우도 있고, 인력사무소를 통해 온 일용직에게 중요한 몇몇 내용만 급히 가르치고 물에 들어가도록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전직 직원인 다른 잠수사 B씨도 "다이버 1명당 텐더 1명이 붙어 작업해야 안전한데 텐더 1명이 잠수사 3명의 산소 호스를 감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하청대표, 직원들 허위 진술 종용 정황도

유족 측 대리인인 김의택 변호사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위험한 잠수 작업을 맡기고 원·하청 모두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사건 원인"이라며 "입수 위치, 작업 방식, 잠수 방법 등을 결정하는 것도 모두 사회 초년생들이 전적으로 다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하청업체는 물론이고, 2018년 이래 하도급 관계를 유지하며 수차례 일감을 준 원청도 안전보건 관리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미포 측은 사고에 대한 1차 책임이 하청업체에 있다는 점만 강조한다. 이에 대해 기범씨 아버지는 "(원청업체인) HD현대미포가 잠수 작업을 전부 하도급 주고 있는데 (안전 문제는) 작은 하도급사가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원청은 책임이 없다'고 한다"며 "도급 주면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것이냐. 무슨 법이 이런가"라며 분노했다. 현대미포 측은 "사고 수습을 위해 유가족과 보다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며 "풀마스크(잠수사와 텐더 간 실시간 소통 도구) 도입 등을 재발 방지 대책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부산노동청 수사와 별개로, 울산해양경찰서는 김형관 현대미포 대표와 대한마린 대표, 현대미포 소속 안전관리자 2명 등 총 4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형사 입건해 조사 중이다.

기범씨 사망 사고 직후 '병원에 입원했다'며 관계기관 조사를 회피하던 대한마린 대표는 지난 5일엔 경찰, 6일엔 노동청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여전히 기범씨 빈소에는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고 유족에게도 연락을 취한 적도 없다. 또 현대미포의 연락도 회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리어 대한마린 대표는 경찰 조사 직전 직원들을 불러 "기범이 과실이 크고, 우리 과실은 없게 '잠수 교육이 돼 있다'고 진술하라"고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된 안전 교육도, 작업 교육도 없었다는 게 직원들의 말이다.

부산= 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