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드도 필요 없어요" AI 무인매장 만든 함명원 파인더스에이아이 대표

입력
2025.01.15 05:00
19면
AI가 수량 파악하고 계산까지 하는 무인 매장 개발
"AI가 일자리 빼앗지 않고 구인난 해결에 도움"

유통업의 미래로 꼽히는 것이 무인 매장이다. 무인 매장은 지속적인 임금 상승과 노동인구의 고령화로 점원을 뽑기 힘든 구인난을 해결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바람에 무인 매장이 속속 늘어나면서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최신 무인 매장은 인공지능(AI)이 결합됐다. 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서울 명동 근처 대신파이낸스센터 건물 지하에 들어선 4평 크기의 무인 편의점이다. 이곳은 일반 무인 매장과 달리 이용자가 일일이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무인 매장은 이용자가 구입 제품의 바코드를 기기로 인식해야 계산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 없이 계산대 위에 올려 놓으면 자동으로 제품별 수량까지 파악해 계산이 끝난다. 바로 AI가 계산원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AI를 접목해 독특한 무인 매장을 만든 주인공은 2020년 파인더스에이아이를 창업한 함명원(41) 대표다. 미국에서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AI를 활용한 '아마존 고'라는 무인 매장을 개발했지만 국내에서는 신생기업(스타트업) 파인더스에이아이가 처음으로 AI 무인 매장을 선보였다. 서울 삼일로 대신파이낸스센터 건물의 무인 매장에서 함 대표를 만나 AI 무인 매장의 전망을 들어 봤다.


피바다 된 편의점

함 대표가 AI 무인 매장을 만든 것은 위기 의식에서 출발했다. 과거와 달리 요즘 편의점은 수익성 악화로 위기다. "편의점이 수익을 내려면 하루에 최소한 170만 원 매출을 올려야 해요. 이 정도 매출이 나오면 점주가 일하지 않고 아르바이트 3명을 고용해 운영할 수 있어요. 이를 업계에서는 '오토 돌린다'고 표현해요. 이런 매장이 전체 편의점의 절반에 불과해요. 이미 편의점은 경쟁이 치열한 피바다(레드오션)가 됐어요."

매출이 인건비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아르바이트 대신 가족이 총동원되는 편의점이 많다. "하루 매출이 110만 원에 미치지 못하면 아르바이트 한 명 쓰고 점주가 직접 일해도 수익이 나지 않아요."

이 정도면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나은데 편의점 본사와 계약에 얽매여 폐업도 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점주들은 무인 매장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무인화하지 않으면 계속 운영하기 힘든 편의점이 많아요."

하지만 편의점 본사, 즉 기업들은 생각이 다르다. "일부 편의점 기업들은 무인화에 소극적이죠. 무인 매장은 미성년자 확인이 어려워 편의점 매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술, 담배를 팔 수 없어요."


AI가 주머니 속 물건까지 파악해 계산

이런 현실을 파악한 함 대표가 제시하는 해결 방안이 AI 무인 매장이다. 이를 위해 그는 '비전 체크아웃'이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비전 체크아웃은 쉽게 말해 AI를 이용한 자동 계산대다. 물건을 계산대에 올려 놓으면 제품 종류와 가격, 수량이 표시된다. 이를 위해 계산대 양쪽과 위에 제품을 빠르게 파악하는 카메라를 설치했다. "제품을 파악하는 정확도가 99%입니다. 만약 카메라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면 물건을 다시 올려 놓으라고 요구해요."

뿐만 아니라 진열대에서 물건을 집어 드는 순간 숫자까지 파악한다. "진열대에 부착된 무게를 확인하는 감지기가 달려 있어요. 이를 통해 매장에 설치된 컴퓨터가 줄어드는 무게로 제품 개수를 파악하죠."

AI 자동 계산대는 대기업에서 개발을 요청했다. "편의점, 슈퍼마켓, 제과점이나 카페 등을 운영하는 대기업 여러 곳에서 개발을 요청했어요. 이미 수요가 있는 셈이죠. 상반기 중 판매 예정인데 가격은 미정입니다."

무인 매장은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일반 편의점을 무인화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작은 크기의 무인 마이크로 매장을 만드는 식이다. "일반 편의점을 무인화하는 사업은 GS25와 1년째 시험 중이에요. 이를 보여주는 시범 매장이 서울 가산디지털밸리에 있죠."

마이크로 매장은 2, 3평 크기의 작은 공간을 활용한 무인 매장이다. 천장에 카메라를 수십 대 설치해 이용자가 집어 드는 제품을 빠르게 파악한 뒤 AI가 신속하게 계산한다. "천장에 카메라를 20대 이상 설치해요. 카메라가 도난 방지 역할도 하지만 사람의 동선과 어떤 제품을 선택하는지 파악해요."

이후 자체 개발한 '워크쓰루'라는 이름의 AI가 계산을 맡는다. 워크쓰루는 매장에 설치하는 컴퓨터에 들어 있다. "카메라가 파악한 제품 이미지로 계산하기 때문에 과일이나 채소 등 바코드 없는 제품도 팔 수 있어요. 심지어 호주머니에 넣은 물건도 계산해요. 카메라가 물건을 집어 드는 것을 파악하고 선반에 다시 내려 놓으면 계산에서 제외해요."


경쟁자 없는 독야청청 기업

AI 무인 매장은 비용 절감과 편의성뿐 아니라 판매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떤 물건이 인기 있고 어디에 배치했을 때 잘 팔리는지 각종 자료를 점주가 알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잘 팔리는 제품을 우선 도입하고 진열 위치를 바꿔 매출을 올릴 수 있죠. AI가 잘 팔리는 제품을 미리 주문하라고 알려주기 때문에 발주도 자동화할 수 있어요."

더욱이 함 대표의 AI 무인 매장은 국내 최초여서 아직까지 경쟁자가 없다. 그러다 보니 그의 경쟁상대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미국의 아마존이다. 무인 매장 기술을 판다는 점에서 사업 모델이 아마존과 겹친다. "아마존의 무인 매장 '아마존 고'가 실패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아마존의 목적은 아마존 고가 아니라 무인 매장 기술인 '저스트 워크아웃'을 기업에 파는 것이죠. 이 기술을 알리려고 아마존 고 매장을 열었어요. 현재 아마존 고 매장은 줄었지만 기업간거래(B2B)를 통해 저스트 워크아웃 기술은 판매가 늘고 있어요. 우리도 같은 방식이에요. 마이크로 스토어는 아마존 고에 해당하고 워크쓰루 AI가 아마존의 저스트 워크아웃인 셈이죠."

AI 무인 매장은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 "해외에서 AI 무인 매장에 대해 많이 물어요. 해외 호텔업체와 무인 매장 운영도 검토 중이죠."

하지만 무턱대고 무인 매장을 늘리지 않을 생각이다. 편의점 등과 충돌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판매를 위해 매장을 운영하는 업체들과 경쟁하지 않고 고객사로 끌어들이고 싶어요.”

문제는 무인 매장의 주류와 담배 판매 규제다. 정부에서 미성년자의 술, 담배 구입을 막기 위해 비대면 판매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를 타개하고자 정부에 규제 예외를 요청하는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으나 아직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모바일 신분증으로 성인 인증을 하면 무인 매장에서도 미성년자의 술, 담배 구입을 막을 수 있어요. 무인 매장의 주류 판매가 허용되면 호텔 등에도 무인 매장이 들어설 수 있어요."


"AI가 구인난 해결"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나와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함 대표는 카이스트 내 정보기술(IT) 융합연구소에서 4년간 일한 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약 3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스마트폰에서 기기 진단 정보를 받아 활용하는 방안과 서버 개발 등을 했어요. 실적이 좋아 승진이 빨랐지만 회사 다니는 것이 재미 없었어요. 특히 일이 몰리는 곳은 몰리고 그렇지 않은 곳은 한가한 대기업의 비효율성을 견디기 힘들었죠. 그래서 창업을 결심했어요."

2016년 첫 번째 창업한 프라이피는 유럽 프로축구의 동향을 알려주는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 개발업체였다. "유럽 축구 팬이기도 하고 당시 동남아시아에서 유럽 축구에 관심이 뜨거워 이를 겨냥한 앱을 만들었어요. 이용자가 150만 명이었지만 동남아시아의 소득수준이 높지 않아 돈을 벌지 못했어요."

2020년 프라이피를 접고 두 번째로 현재 회사를 창업했다. 무인 매장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일본 편의점 사례에서 보듯 구인난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AI가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인력을 대신하게 된다. "일본 도쿄의 편의점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해요. 일할 만한 젊은이가 없기 때문이죠. 초고령 국가인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유통 기업들은 구인난 때문에 5, 10년 뒤 매장 운영을 고민해요. 외국인마저도 수도권에 몰리면서 자칫 잘못하면 지방에는 편의점이 사라질 수 있어요. AI 무인 매장 기술이 구인난을 해결할 열쇠죠."

그는 AI 무인 매장 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 시장을 고스란히 미국과 중국에 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체 기술이 없으면 미국과 중국 기술을 쓸 수밖에 없어요. 정부도 이 점을 우려해 파인더스에이아이를 성장 잠재력이 높은 아기 유니콘으로 선정했어요."

정부뿐 아니라 투자사들도 이를 높게 평가해 전체 직원 30명 가운데 20명이 개발자로 일하는 이 업체에 누적으로 77억 원을 투자했다. "끌림벤처스, 컴퍼니케이파트너스, 퀀텀벤처스 등에서 투자 받아 3년간 기술을 개발했어요."

앞으로 그의 목표는 해외 진출과 함께 유통업을 빠르게 디지털로 전환하는 것이다. "편의점 왕국인 일본과 싱가포르를 먼저 공략하고 미국에 진출해야죠. 기존 유통 매장을 AI 무인 매장으로 전환하면 판매자의 수익이 올라가고 소비자는 편해요. AI 무인 매장 기술이 이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겁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