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80원 가까이 급등했던 지난해 12월, 우리나라 원화 가치가 주요 통화 중 러시아 루블화 다음으로 약세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떨어질 줄 모르는 고환율 흐름에 물가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 절하율은 -5.3%였다. 20개 주요국 통화 가운데 루블화(-6.4%) 다음으로 큰 낙폭이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 구성 통화 중 일본 엔화의 절하율(-4.7%)이 가장 컸으나 그럼에도 원화보다는 가치가 하락하지는 않았다. 스위스 프랑화(-2.9%), 캐나다 달러화(-2.6%), 유럽연합(EU) 유로화(-2.1%), 영국 파운드화(-1.7%), 스웨덴 크로나화(-1.6%)도 모두 원화보다 크게 양호했다.
달러 강세 기조는 명확했으나 원화가 유독 더 약세였다는 얘기다. 특히 12·3 비상계엄 이후 불안정한 정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큼 원화 가치를 떨어뜨린 요인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비상계엄 선포 직전 주간 거래를 1,402.9원으로 마감한 원·달러 환율은 선포 직후 야간 거래에서 장중 1,441.0원까지 급등했다. 주간거래 종가 기준으로 환율도 지난해 11월 말 1,394.7원에서 12월 말 1,472.5원으로 치솟았다.
문제는 고환율이 물가를 밀어올린다는 데 있다. 불과 한 달 남짓한 기간 뛴 환율이 이미 소비자물가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은은 '최근 환율 변동성이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임 의원의 질의에 "모형 추정 결과를 고려하면,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의 환율 상승은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0.05~0.1%포인트 정도 높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회신했다.
고환율에 따른 고물가는 이달에도 계속된다는 전망도 덧붙었다. 한은은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 고환율 등으로 조금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연초 환율 오름세는 잠시 멈췄으나 1,450원 안팎의 고환율 상태가 빠르게 해소되긴 어렵다는 진단이다. 임 의원은 "환율이 러시아 수준으로 크게 절하돼 실물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과중한 상황"이라며 "시장 안정화 조치가 작동할 수 있도록 국정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