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정부의 '아동 수출' 기조 아래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인에게 입양기관이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입양인 손을 들어준 첫 1심 판결을 뒤집은 결과인데, 법원은 기관의 불법행위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청구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기간이 만료됐다고 봤다.
서울고법 민사3-2부(부장 최현종)는 아담 크랩서(49·한국명 신송혁)씨가 국가와 홀트아동복지회(복지회)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8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앞서 1심은 신씨가 청구한 2억 원 중 1억 원을 복지회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씨는 세 살이던 1979년 3월 누나와 함께 미국에 입양됐다. 기록에 따르면 신씨의 생모는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신씨를 시설에 맡겼고, 해당 시설 원장이 해외입양이민승락서를 작성해 복지회에 제출했다. 신씨를 넘겨 받은 복지회는 신씨를 고아로 신고하고 새 호적을 만들었다.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간 신씨의 유년시절은 악몽과 같았다. 양부모의 지속적 학대를 받다가 열 살 때 파양됐다. 이후 크랩서 부부에게 재입양됐지만, 심각한 학대는 이어졌다. 크랩서 부부는 신씨가 열여섯 살 때 또다시 파양했다. 양부모들은 신씨의 시민권 취득 절차도 밟지 않았다.
가족 품을 벗어난 신씨는 이후 절도와 상해 등 혐의로 3차례 처벌 받은 전력이 문제가 돼 영주권 갱신이 거절되고 2016년 한국으로 추방됐다. 3년 후 신씨는 복지회와 한국 정부가 후견인으로 의무를 다하지 않아 학대당하고 국적 취득에도 실패해 추방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신씨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해외 입양인이 알선 기관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이긴 첫 사례였다. 재판부는 "복지회는 양부모가 시민권 취득 절차에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신씨의 국적 취득을 확인할 의무가 있는데 이행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직접 배상 책임은 없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도 시민권 취득 부분에 있어 복지회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성인이 된 이후엔 신씨 스스로 귀화 절차를 밟을 수 있었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영주권자 지위로라도 미국에서 영구히 거주할 수 있었던 점을 들어 강제추방에 대한 복지회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복지회의 '소멸시효 완성' 논리를 받아들였다. 기관의 책임이 신씨의 미성년자 시절에 국한되는 한, 성인이 된 1996년이나 시민권 미취득 사실을 알게 된 2011년부터 시효를 따지는 게 타당하다고 봤다. 민법상 시효는 손해 발생일로부터 10년, 알게 된 날로부터 3년이다.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입양은 민법상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게 국제인권규범에 위배된다'는 신씨 주장에 대해서도 "해당 규범이 국내법 규정에 우선 적용되는 법적 효력을 가진다고 봐야 할 아무런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국외입양이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