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다음 달 퇴임을 앞둔 주한미국대사를 만나 “떠나시더라도 한미관계는 굳건하게 잘 발전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한국에 급작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 신속하게 다양한 입장을 내준 것에 정말로 깊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공포를 놓고 “심각한 오판”(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 등의 표현을 써가며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를 찾은 필립 골드버그 대사를 만나 “이번에 대한민국이 혼란을 겪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한미관계도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에 골드버그 대사는 “21세기에 저희가 상상하기 어려운 비민주적 상황이 벌어졌단 사실이 안타깝다”며 “한국이 겪고 있는 정치 헌법적인 절차가 잘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골드버그 대사가 언급한 ‘정치 헌법적 절차’는 헌법재판소에서 이뤄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골드버그 대사는 이 대표 예방에 앞서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도 만났다. 그러나 두 회동에서 오간 이야기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현재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해 외교관계를 이끌고 있다”고 운을 뗀 권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으로 한미동맹의 공백이 없도록 정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한다”라며 집권 여당을 유독 부각시켰다. 민주주의 가치에 반하는 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이 속한 국민의힘이 반민주적 정당으로 비치는 걸 우려한 발언으로 볼 수도 있다.
반면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이 아닌 대한민국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대한민국은 미국의 큰 도움으로 경제적 성장과 평화 안정을 누려왔다”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자유민주진영의 일원으로 그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다해나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대표가 아닌 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서 수권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특히 “한미 관계뿐 아니라 한미일 간 협력관계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미국이 중시하는 한미일 3각공조를 굳건하게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앞서 불발된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에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3국 공조 강화’를 탄핵 사유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 담겨 논란이 된 바 있다. 해당 대목은 이 대표 지시로 2차 탄핵소추안에서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