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 중 75%를 상반기에 배정한다. 국가 예산을 조기 배정해 12·3 불법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얼어붙은 내수 심리를 살리고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야당이 감액한 내년도 예산안을 단독처리한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을 확대하기 위해선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2025년도 예산배정계획'을 확정했다. 예산배정은 각 부처에서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절차다. 예산배정이 이뤄져야 계약 등의 행위가 가능하다.
내년도 정부 예산 중 기금을 제외한 일반·특별회계에서 지출될 예산(세출예산)은 올해보다 4.5% 늘어난 574조8,0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상반기에 배정된 예산은 431조1,000억 원이다. 상반기 예산배정률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70%대 초반이었지만 2023년 75%를 배정한 후 3년 연속 유지했다.
정부가 이처럼 상반기에 역대 최대 규모 예산을 배정한 건 그만큼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뜻이다. 기재부가 최근 발표한 '경제동향 12월호'를 보면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안정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가계·기업 경제심리 위축 등 하방위험 증가가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통계청의 10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더라도 한국 경제의 활력도를 보여주는 생산·소비·투자 산업활동 3대 지표 모두 전월 대비 일제히 하락하는 '트리플 감소'를 나타내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탄핵 정국으로 불확실성은 여전하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내년에 들어서면 수출 리스크는 곧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서민 생계부담을 완화하고 소상공인 맞춤형 지원, 첨단산업 육성 등 경제활력 확산을 위해 조속한 집행이 필요하다"며 "조기 배정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런 탓에 추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추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현재 통과된 내년도 예산안은 경제(성장률)에 마이너스 0.06%포인트 영향을 준다"며 "하방위험이 있는 만큼 (정부) 재정을 조금 더 이용할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앞서 감액 예산이긴 하지만 확정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집행 준비가 우선이라며 추경 논의에 선을 그었던 정부도 필요성은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지금 민생이 어렵고 대외 불안성이 확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은 동의한다"며 "내년에 발생할 대외 불확실성과 민생 상황을 봐가며 적절한 대응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