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대통령 대행 체제로 '트럼프 시대' 맞는 한국… 대미 외교 첩첩산중

입력
2024.12.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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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덕수 대행과 협력 준비” 추인
한계 분명… 정상 외교 파행 불가피
정권 바뀌면 대북·대중 이견 가능성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한국은 대통령 대행 과도 정부 체제로 맞게 됐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윤석열 대통령이 12·3 불법 계엄 사태 심판을 받으면서다. 2017년 1월 트럼프 집권 1기 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무 정지 같은 상황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추인으로 한숨을 돌리기는 했지만, 당장 정상 외교 파행부터 정권 교체 시 이견 가능성까지 대미 관계가 첩첩산중에 들어선 형국이다.

개인 유대 쌓기 힘든 임시 수반

미국 국무부는 14일(현지시간)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및 한국 정부와 협력을 지속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총리실은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튿날인 한국시간 15일 한 대행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을 공개했다.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정당한 한국 정부로 인정받아 급한 불은 끈 셈이다.

미국 전문가 사이에서 한 대행 평판은 나쁘지 않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국 담당 보좌관 시절 주미대사였던 한 대행을 만났다는 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한 대행은 한국 탄핵 정국과 미국 정권 교체기에 한미 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전문성과 기량을 겸비했다”고 평가했다. 폴 공 루거센터 선임연구원도 본보에 “한 총리의 유창한 영어는 트럼프와의 통역가 대동 골프 라운딩보다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계가 분명한 것도 사실이다. 일단 정상 외교 파행이 불가피하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12일 팟캐스트 대담에서 “트럼프는 지도자 간 개인적 유대를 중시하는데 한국에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트럼프 측과의 접촉이 힘든 상황에서 설상가상 고위급 협의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계엄 사태 수사 때문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13일 국회에서 ‘외교 비상 사태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심각한 데미지(피해)가 있다”고 답했다. 주미대사관은 14일 조현동 대사 주재로 긴급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북, 도발로 과도 정부 흔들 수도

공백 상태는 손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본보에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한국과의 관계를 뒤로 미룰 수 있다”고 말했다. 공 연구원도 “트럼프가 취임 첫날 관세를 부과한다고 한 만큼 이를 낮추려는 각국 협상팀의 각축도 심해질 텐데 미국 정부가 한국을 먼저 만나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처지는 8년 전 데자뷔다. 1기 트럼프 행정부 임기 시작 때도 한국은 탄핵안 가결로 박근혜 당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고 황교안 총리가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그때는 첫 집권에 따른 미국 정부의 정책 준비 기간과 시행착오 덕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특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분야는 안보다. 사일러 고문은 “북한이 지금은 자신들이 혼란을 악용하려 한다는 남한 보수 세력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지 않으려 자제하고 있지만, 내년 1월 트럼프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 뒤에는 한 대행 체제를 흔들고 대응을 둘러싼 한미 간 긴장을 조성하려 도발을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반대로 북미 대화가 조기 성사될 경우 리더십 부재가 ‘한국 패싱(배제)’을 초래할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소추 결정을 인용해 대선이 치러지고 그 결과 정권이 바뀌면 한미동맹과 한미일 3국 공조에 악재라는 게 미국 보수 성향 전문가들 전망이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안보석좌는 본보에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대북 인식과 대중 강경책 등 윤 대통령이 밀어붙여 한미가 합의한 것들이 위태로워진다”고 말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트럼프 행정부는 역내에서 증대되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신뢰할 만한 동맹을 찾고 그들의 기여를 평가할 텐데, 한국 진보 성향 야당 집권 가능성이 커지며 미래가 어두워졌다”고 본보에 밝혔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