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8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하라고 검찰과 경찰에 요청했다. 검·경은 '중복수사 우려'를 이유로 든 공수처의 이첩 요청에 긴급 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수사 주도권을 두고 갈등을 빚던 두 기관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모양새다.
공수처는 이날 "오동운 공수처장이 공수처법 24조에 따라 검찰과 경찰을 상대로 비상계엄 사건 이첩 요청권을 행사했다"고 이날 언론에 공지했다. 이첩 기한은 이달 13일로 정했다. 공수처법 24조는 '공수처의 범죄 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 수사에 대해 공수처장이 수사의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춰 공수처에서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수처가 요청하면 다른 수사기관은 사건을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공수처의 이런 결정은 검찰과 경찰이 수사 주도권을 두고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검찰, 경찰, 공수처는 3일 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을 내란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수사해 달라는 고소·고발장을 각각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제출받았다. 세 기관은 5일 일제히 사건을 배당하며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직접 수사할 수 있다고 보고 6일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고, 경찰도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단 인력 대부분을 투입한 전담수사팀을 꾸린 뒤 이날 특별수사단으로 규모를 확대했다. 검·경은 이날까지 김 전 장관 긴급체포, 압수수색 등을 진행하며 수사 경쟁을 벌여왔다.
공수처 역시 3일 계엄 선포 직후부터 처장 직속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법리 검토와 강제 수사 착수 여부를 검토했고, 그 결과 군 관계자 등에 대해 사법처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현직 대통령 불소추특권에서 예외인 내란죄는 공수처 수사 대상 범죄가 아니지만, 공수처법상 '직권남용 혐의 사건의 관련 범죄'로 내란 혐의 사건을 수사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봤다.
공수처는 수사4부(부장 차정현)에 사건을 배당한 이튿날인 6일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법원은 그러나 '동일 또는 유사한 내용의 영장 중복 청구' 등을 이유로 기각했다. 법원은 '수사 효율 등을 고려해 각 수사기관(검찰, 공수처, 경찰 등) 간 협의를 거쳐 중복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등 조치를 취해 달라'고 덧붙였다. 공수처 관계자는 "현재 검찰과 경찰이 수사 우선권 등을 놓고 주도권 경쟁을 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언론 보도도 있다"면서 "중복수사 우려를 해소하고 수사의 신속성, 공정성 확보 등을 위해 이첩요청권을 행사했다"고 강조했다.
공수처는 오 처장 지휘 아래 수사 인력 전원(검사 15명, 수사관 36명)을 투입해 수사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공수처법 17조 4항(처장은 직무 수행에 있어 필요한 경우 관계 기관의 장에게 고위공직자범죄 관련 사건의 수사기록 및 증거 등 자료의 제출과 수사활동의 지원 등 수사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을 언급하면서 "주요 관련자에 대한 신문 등 초동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압수수색, 참고인 조사 등 수사에 필요한 조치들을 관계 수사기관과 협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