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연이 담긴 풍경화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곳곳에 비밀스러운 문화 코드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일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풍경화 속엔 읽을 것이 넘쳐 난다. 미술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해 줄 풍경화 명작을 골라 10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미술의 역사를 바꾼 풍경화를 손꼽을 때, 모네가 그린 '인상, 일출'을 빼놓을 수 없다. 한 손으로 들고 다닐 만한 작은 그림이지만, 현대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50년 전인 1874년에 열린 첫 번째 인상파 전시에 출품되어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가져다준, 작지만 위대한 풍경화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미술평론가 루이 르로이는 바로 이 작품에 들어간 제목 '인상'을 꼬집어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 전체를 비하하는 의미로 '인상주의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림은 본질을 그려야 하지만, 인상 같은 헛된 그림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비아냥거리듯 사용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현대미술의 시작을 여는 인상주의 미술운동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미술평론가 루이 르로이는 이 그림을 "제멋대로 대충 그린 그림"이라며, "벽지를 그리려고 막 그린 드로잉이 이 그림보다 낫다"고 평했다.
모네의 그림을 당시 풍경화와 비교해 보면 평론가의 비난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테오도르 루소가 1861년에 그린 '퐁텐블로 숲의 이른 여름 아침'은 모네처럼 아침 풍경을 담고 있다. 루소는 자연을 자연답게 그리겠다는 태도로 나무와 바위, 풀 등 다양한 자연적 요소를 정밀한 사진기처럼 하나하나 진지하게 그려냈다. 이에 비교하면 모네의 풍경화는 확실히 대충 그린 듯 낙서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면 모네는 왜 이런 그림을 그린 걸까?
모네의 인상, 일출은 작가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항구도시 르아브르의 풍경을 담고 있다. 여기서 모네는 무엇보다 자신의 고향의 변화된 모습에 주목했다. 그의 그림을 당시 르아브르의 항구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과 비교해 보자. 사진의 배경에 거대한 증기선이 떠 있고 그 뒤로 거대한 기중기와 공장들도 보인다. 그런데 사진의 앞쪽에는 이런 변화와 무관한 듯 돛단배들이 한적하게 떠다니고 있다.
방금 사진에서 봤던 요소는 모네의 풍경화에서도 등장한다. 배경에 큰 배의 모습도 여기저기 보이고, 그 뒤로 기중기가 즐비하게 서 있다. 공장의 굴뚝들은 연기를 한껏 내뿜고 있으며, 사진처럼 나룻배 서너 척이 우리를 향해 뉘엿뉘엿 노 저어 나오고 있다. 모네가 활동하던 19세기 후반 프랑스는 곳곳에서 이런 장면이 목격되었을 것이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여전히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유지되던 혼란스런 사회였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담으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모네는 화폭에 단순히 이런 변화만을 옮기려 한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의 압권은 해가 떠오르는 순간 바닷물에 길게 어린 물비늘을 그린 장면이다. 그림의 다른 부분이 옅고 흐리게 표현된 것과 대비되어 이 부분만큼은 아주 두텁게 색칠되어 있다. 모네는 해돋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빨강과 노랑과 흰색 물감을 듬뿍 묻힌 붓을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이렇게 모네는 순간 햇빛이 바다를 가로지르면서 벌어지는 일출 장면을 통해 자연의 위대함을 일깨우면서, 이를 통해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나름대로 화면 안에서 통합시키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물비늘 장면을 그린 모네의 필치는 낙서처럼 삐뚤거린다. 그런데 이러한 떨림은 모네가 자신의 눈으로 본 장면을 최대한 붓으로 해석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낙서처럼 보일 수 있지만, 휘갈긴 듯한 붓자국이 오히려 생생함을 통해 해돋이의 감동을 더 강하게 담는다. 좀 더 확대하자면 생동하는 현대의 삶을 담기에는 인상주의자들이 보여준 이런 빠른 필치가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순간을 담으려는 빠른 필치가 빚어내는 속도감은 인상주의 미술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모네의 흔들리는 필치가 어디서 왔는지 잘 보여주는 그림 한 점이 있다. 그의 선배이자 동료인 마네가 그린 '배 위의 모네'라는 그림이다. 여기서 모네는 배 위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화가의 필치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모네는 이런 현장에서 바로 그 순간의 리듬과 감동을 화폭에 담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림 제작 방식은 당시에 통용되던 방식과 정면으로 대치하였다. 인상주의 이전까지 화가들은 기본적으로 야외에서는 스케치만 하고 실제 그림은 실내 스튜디오에서 치밀하게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눈으로 본 풍경도 교본에 따라 재해석되어야 했다. 그런데 모네를 비롯하여 인상파 화가들은 야외에서 스케치뿐 아니라 완성까지 이뤄내려 하였다. 이처럼 야외에서 작품을 그려내는 그들의 제작 방식을 프랑스어로는 '플라네르(Plein Air)', 영어로는 '오픈 에어(open air)'로 부르는데, 이 때문에 인상파 화가들을 한때 한자어로 '외광파(外光派)'로 부르기도 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인상주의자들은 새로운 시대를 이러한 새로운 제작 기법으로 담으려고 했다. 모네의 인상, 일출은 바로 이런 제작 태도를 극대화시킨 작품인 것이다.
인상파 이후에도 당시의 변화하는 파리 풍경을 포착한 일군의 도전적인 화가들이 있다. 이들은 인상파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이 기법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기 때문에 후기 인상파 또는 신인상파라고 불린다. 세잔이나 고흐, 고갱, 쇠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중 특히 쇠라 같은 작가는 인상파의 직접적인 현장 작업방식에 한계를 느껴 기존의 제작 방식으로 되돌아간다. 대신 야외에서 충실하게 드로잉을 그려 그것을 바탕으로 작업실에서 제작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은 화폭 대신, 폭 3m, 높이 2m의 거대한 화면을 펼쳐 보일 수 있었다. 쇠라의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는 거대하면서도 세부 표현은 촘촘한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점들은 마치 빛의 입자 같은 역할을 하면서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 때문에 쇠라의 그림을 '새로운 인상주의'라는 의미로 신인상주의라고 부른다.
그림의 배경으로 연기를 내뿜는 공장과 기차가 지나가기 위해 지어진 다리가 보인다. 그 앞으로는 센강이 흐르고 강 위로 작은 배들이 떠다닌다. 전경의 강둑에는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공장의 굴뚝엔 연기가 보여 그림이 그려진 시간이 평일 낮의 일과 시간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등장인물은 모자를 통해 사회적 신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벙거지나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은 웃통을 벗거나 가벼운 옷차림으로 신분이 낮은 하층민으로 보인다. 이들은 낮 시간대 쉬고 있다는 점에서 실직자로도 볼 수도 있다. 이들 옆에 편히 누워있는 남자는 볼러(bowler)라는 모자를 쓰고 정장을 입고 있다는 점에서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멀리 강 위에 뱃놀이를 즐기는 남성은 실크햇이라는 위가 높은 모자를 쓴 것으로 보아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옆에 앉은 여성은 파라솔을 쓰고 있고, 밀짚모자를 쓴 뱃사공이 열심히 노를 젓고 있다. 배에는 프랑스 혁명 깃발이 꽂혀 있다.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는 프랑스 혁명 이후 새롭게 재편된 프랑스 사회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광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