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유통 등 주요 사업 성적 부진에 최근 유동성 위기설까지 겹친 롯데그룹이 역대 최대 규모의 최고경영자(CEO) 교체를 결정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남인 신유열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선다. 큰 폭의 대표 물갈이, 젊은 피 발탁으로 요약되는 롯데그룹의 인사 강도는 안정을 지향한 다른 대기업보다 셌다. 위기설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쇄신 인사로 풀이된다.
롯데가 28일 단행한 2025년 정기 임원 인사를 보면 유통과 함께 핵심 두 축을 이룬 롯데화학군의 변화가 가장 눈에 띈다. 전체 CEO 13인 중 지난해 선임된 롯데알미늄 대표 등 3인을 뺀 10인이 바뀐다.
특히 화학군의 큰집 역할을 하는 롯데케미칼을 이끌던 이훈기 총괄사장이 물러난다. 그는 지난해 말 롯데케미칼 CEO를 맡아 유임될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실적 부진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대신 롯데케미칼에서 첨단소재사업 수장이었던 이영준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새 대표를 맡는다. 이 회사는 2022년 7,626억 원, 2023년 3,477억 원의 손실을 낸 데 이어 올해 1~3분기에도 6,60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회사채 문제가 생겨 유동성 위기설의 진원지로 꼽히기도 한다.
호텔롯데도 3개 사업부인 롯데호텔, 롯데면세점, 롯데월드 대표가 모두 짐을 싼다. 롯데 화학군처럼 성과를 내지 못한 계열사를 향한 신상필벌 인사다. 롯데 모든 계열사로 넓혀보면 전체 CEO의 36%인 21인이 교체됐다.
신유열 부사장 등 젊은 롯데로의 전환에 속도를 낸 점도 특징이다. 2020년 롯데에 입사해 올해 전무급인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맡은 신유열 부사장은 승진을 통해 신사업과 글로벌 사업의 핵심으로 한 발 더 다가선다.
1986년에 태어난 신유열 부사장은 경영진에 합류하면서 신동빈 회장의 후계자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됐다. 1970년생 김동하 롯데면세점 대표를 비롯해 50대 초·중반인 1970년대생 12인도 신임 CEO로 전진 배치했다.
롯데는 대표 교체 외에 전체 임원의 22%도 짐을 싼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임원 수가 13% 줄어든다. 60대 이상 임원으로 좁히면 절반 넘게 물러난다. 조직을 가볍게 해 의사 결정 속도를 높이려는 차원이다. 아울러 연말에 진행하던 정기 임원 인사를 끝내고 내년부터 수시 인사로 전환한다. 실적에 따라 연말까지 기다리지 않고 경영진을 곧바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한편 롯데는 이날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연 기업 설명회에서 유동성 위기설을 두고 반박에 나섰다. 롯데쇼핑이 7조5,000억 원 규모의 토지 자산을 재평가한다고 설명하는 등 재무 건전성이 탄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롯데 관계자는 "롯데는 8월 비상경영 돌입 후 지속적인 경영 체질 개선과 책임 경영 강화를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며 "과감한 인적 쇄신으로 경영 체질을 바꾸고 성과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물어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