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반에 집에서 나왔는데, 회사 도착하니까 오전 11시더라구요."
매일 아침 경기 시흥시에서 용인시로 출퇴근하는 김모(34)씨는 28일 출근길이 '지옥' 같았다고 했다. 평소엔 오전 6시 회사 셔틀버스를 타면 오전 7시 30분이면 회사에 도착했는데, 이날은 4시간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폭설로 도로에 갇힌 버스가 '거북이걸음'을 한 탓이었다. 도통 앞으로 가지 않는 버스에 "차라리 연차를 쓰겠다"며 중간에 내리는 직원들도 속출했다. 김씨는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같은 곳에 버스가 서 있어서 공포스러웠다"고 혀를 내둘렀다.
수도권에 이틀 연속 쏟아진 '눈 폭탄'으로 평소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 여럿 연출됐다. 서울은 이날 오전 8시 28.6㎝의 적설을 기록하며 11월만 놓고 보면 117년 만에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로 인한 심각한 교통 체증으로 일부 직장인들은 출근을 포기했고, 대학교에선 교수가 학교에 도착하지 못해 강의가 취소되기도 했다. 휴업을 하거나 등하교 시간이 조정된 초·중·고교도 있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나무와 구조물이 쓰러져 인명피해가 나는 등 사건사고도 잇따랐다.
이날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 사당역 승강장은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했다. 출입문 앞 '네 줄 서기'를 해달라는 안내 방송에 질서가 갖춰지는 듯했지만, 전동차가 들어오자 지각을 면하기 위해 어떻게든 탑승하려는 사람들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곳곳에서 불평불만도 터져 나왔다. 이처럼 붐비는 모습이 낯설었던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지하철 1호선을 타고 출근한 김종국(55)씨는 "사람이 워낙 많아 탑승 내내 꽉 조이는 기분이 들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교통 체증이 풀리지 않자 '출포족'(출근 포기족)도 생겼다. 경기 수원시에 사는 이모(35)씨는 "아침에 주차장에 가보니 눈이 무릎까지 쌓여 차를 도저히 뺄 수가 없더라"며 "연말이라 연차가 얼마 안 남았지만 그냥 휴가를 썼다"고 했다. 온라인상에선 전직 국가대표 스키선수이자 현재 고교 체육교사인 김정민씨가 스키를 타고 출근하는 사진이 나돌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날 수원엔 1964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43㎝의 눈이 쌓였다.
학생들 안전을 고려해 등하교 시간을 조정하는 학교도 속출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휴교 결정을 내린 학교는 서울·인천·충북에서 각각 2곳, 경기는 1,285곳이나 됐다. 학교 시설 피해도 서울·경기를 합쳐 100건 이상 접수됐다. 대학생 박건현(20)씨는 "교수님이 새벽에 오늘은 출석을 안 부른다고 공지하셨고, 다른 아침 수업은 취소됐다"며 "오늘처럼 지하철에 사람이 많은 건 처음이었다"고 전했다.
시설 붕괴와 대규모 정전, 다중추돌 사고도 발생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염리동·성산동 일대에는 750여 가구가 정전됐다.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가 전선을 눌러 전선이 끊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서울 남산공원 둘레길 및 남측순환로는 밤새 폭설로 오래된 소나무 등이 넘어져 한때 출입이 통제됐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도 동문 앞 대형 나무가 쓰러져 동문이 임시 폐쇄됐다.
날이 풀리자 빌딩 난간이나 나무에 쌓였던 눈이 떨어져 시민들이 맞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직장인 이상원(34)씨는 "점심시간에 길을 걷다 빌딩 난간에서 떨어진 3㎝ 크기의 얼음덩어리에 맞았다"며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서도 눈이 떨어져 위만 보고 걷고 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