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무대서 눈물 글썽인 나달..."꿈 이룬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입력
2024.11.20 17:10
19면
첫 프로 무대였던 데이비스컵서 은퇴
8강 탈락..."데뷔전, 마지막 경기 모두 졌다"
페더러 "나달, 테니스계 자랑스럽게 했다"
조코비치 "그와 라이벌로 불린 것 영광"

라파엘 나달(38·스페인)이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의 프로 인생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데이비스컵 파이널스에서 23년간의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비록 유종의 미를 거두진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의 집념에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나달은 20일(한국시간)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린 2024 데이비스컵 파이널스 8강전에서 보틱 판더잔출프(네덜란드)에 세트스코어 0-2(4-6 4-6)로 패했다. 데이비스컵 파이널스는 단식 2경기와 복식 1경기 등 총 3경기로 구성되며 먼저 2승을 올리는 팀이 승리한다. 스페인은 이날 나달의 패배 후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두 번째 단식에서 승리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으나, 복식에서 또다시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로써 나달의 프로 여정도 마무리됐다.

나달은 이날 코트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눈물을 글썽였다. 국가가 울려 퍼지자 감정이 더욱 북받쳤는지 입술을 꽉 깨물고, 손가락을 덜덜 떨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전날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팀의 우승을 다짐하며 "내 감정은 가장 마지막 순간에 나타낼 것"이라던 약속을 지키려 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나달은 네트 플레이로 선전했지만 승부를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 2년간 각종 부상 탓에 국제대회 출전을 거의 하지 못하면서 경기 감각이 현격하게 떨어졌다. 판더잔출프는 1세트 두 번째 게임에서 7차례의 서브 폴트로 흔들렸지만, 이내 특유의 침착함을 되찾고 승부를 가져갔다.

나달의 은퇴 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 1만1,300여 명의 관중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달을 향해 뜨거운 박수세례를 보내며 아쉬움과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나달 또한 여느 때처럼 상대 선수와 정중하게 인사를 나눈 뒤,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전광판에는 '고마워요, 라파'라는 문구가 띄워졌다.

대회를 마친 나달은 다시 코트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나는 테니스 덕분에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은 매우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며 "꿈을 좇아 내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이상을 성취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은퇴 소감을 전했다.

이어 "데이비스컵 데뷔전에서 패했는데, 마지막 경기에서도 졌다"며 나지막이 웃기도 했다. 그는 데비이스컵 파이널스에서 총 29승 2패를 기록했는데, 2패가 바로 2004년 데뷔 당시 그리고 이날 은퇴 무대에서 나왔다.

한편 2000년대부터 세계 테니스계를 호령했던 '빅3' 중 로저 페더러(스위스)에 이어 나달이 은퇴하면서 현역에는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만 남았다. 페더러는 "나달의 멋진 커리어는 전 세계 테니스계를 자랑스럽게 만들었다"고 칭송했고, 조코비치 역시 "나달의 힘과 끈기는 연구할 가치가 있다. 그와 라이벌이라고 불린 것은 영광"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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