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차 한국 왔다 덜미 잡힌 '랜섬웨어 조직' 러시아 총책… 美 압송

입력
2024.11.19 11:02
악성 소프트웨어로 기업에 223억 원 뜯어
900억 자금세탁 베트남인도 공항서 검거
'긴급인도구속' 활용 11월만 2명 美 인도
"한국, 초국적 범죄척결 의지 세계에 알려"

미국 기업 등 수십 곳을 해킹해 악성 소프트웨어(랜섬웨어)를 심어 주요 데이터를 암호화한 뒤 해제해주는 대가로 수백억 원을 갈취한 국제범죄조직 총책 등이 한국 당국에 체포돼 미국으로 송환됐다.

법무부는 '한미 범죄인인도조약'과 '범죄인인도법'에 따라 랜섬웨어 범죄조직 총책인 40대 러시아인 남성 A씨를 검거해 미국에 인도했다고 19일 밝혔다.

A씨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미국 기업 등 수십 곳의 데이터를 랜섬웨어로 암호화한 뒤, 암호화 해제를 대가로 1,600만 달러(약 223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갈취한 혐의로 미국 연방수사국(FBI) 추적을 받아왔다. 미 당국은 A씨가 병원 치료를 위해 한국에 입국할 예정이라는 첩보를 입수, 즉각 한국 법무부에 '긴급인도구속'을 청구했다.

긴급인도구속은 한미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정식 범죄인인도 청구 전 피청구국이 해당 범죄인을 체포·구속하는 제도다. 긴급인도구속을 청구한 나라는 구속일로부터 2개월 내에 정식 범죄인인도 청구를 해야 한다. 정식 청구가 접수되면 법무부 장관 검토를 거쳐 법원이 인도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범죄인인도 사건을 관할하는 서울고검은 A씨에 대한 긴급인도구속 영장을 발부받아 5월 15일 아랍에미리트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A씨를 체포하고 휴대폰 등 주요 증거물을 압수했다. 이후 검찰은 FBI 등과 협력해 범죄인인도 재판을 진행했고, 9월 서울고법은 A씨의 인도 허가를 결정했다. A씨는 1일 미 당국으로 인도됐다.

법무부는 또 자금세탁 혐의로 미 당국이 추적 중인 20대 베트남인 남성 B씨도 미국으로 송환했다. B씨는 미 당국을 속여 실업 급여를 수령한 뒤, 이를 미디어 그룹으로 꾸민 페이퍼컴퍼니에 구독료 명목으로 송금하는 수법을 써서 자금세탁을 해온 조직의 핵심 관리자다. 미 국무부 외교안보국에 따르면 B씨가 속한 조직이 2022년부터 올해까지 은닉한 범죄수익은 약 6,700만 달러(약 933억 원)에 이른다. 미 법무부의 긴급인도구속 청구를 받은 한국 당국은 단기비자로 입국한 뒤 6월 5일 인천공항을 통해 베트남으로 출국하려던 B씨를 검거해 15일 미국으로 송환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미국과의 형사사법공조를 진행, 한국에 있는 공범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해 범행에 사용된 휴대폰, 노트북 등의 증거를 신속하게 확보하고, 이를 미국 당국에 제공하는 등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초국가적 범죄에 대한 한국의 범죄 척결 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린 사례"라고 말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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