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피' 박영현(KT)이 '포스트 오승환(삼성)'으로 급부상했다.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 참가 중인 한국 야구대표팀의 큰 수확은 성적과 별개로 향후 10년은 대표팀의 뒷문을 확실하게 책임질 '미래 자원' 박영현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박영현은 16일 대만 타이베이 톈무구장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B조 4차전 도미니카공화국과 경기에서 4-6으로 뒤진 8회초 1사에 등판해 1.2이닝 2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9-6 대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시작은 불안했다. 8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박영현은 대타 페드로 곤잘레스에게 안타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견제로 주자를 잡았고, 후속 프랭크 로드리게스를 삼진으로 처리했다.
곧바로 ‘약속의 8회’가 재연됐다. 1사 1·3루에 송성문(키움)의 적시타가 나왔고, 2사 2·3루에 박성한(SSG)이 역전 2타점 3루타를 터트렸다. 여기에 최원준(KIA)과 홍창기(LG)가 각각 1타점씩을 더해 빅이닝을 완성했다.
박영현은 9회초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이번에도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했지만, 후속 타자들을 우익수 뜬공과 병살타로 처리해 경기를 마무리했다. 두 이닝 연속 첫 타자에게 안타를 맞고도 차분하게 아웃카운트를 늘리는 모습에서 ‘돌부처’ 오승환이 오버랩됐다.
박영현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펼친 호투는 이날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14일 쿠바전에서도 9회초 등판해 단 10개의 공으로 1이닝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8-4 승리를 지켰다. 약 1년 전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셋업과 마무리 보직을 오가며 4경기에 출전, 5.1이닝 무실점 2홀드 1세이브로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국제대회에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선수지만, 사실 박영현은 KBO리그 팬들에게는 익숙한 얼굴이다. 그는 데뷔 시즌이었던 2022년 52경기에 등판해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3.66의 준수한 성적을 냈고, 지난 시즌에는 68경기 3승 3패 32홀드 4세이브 평균자책점 2.75를 기록하며 홀드왕에 등극했다. 올해에는 삼성으로 이적한 김재윤의 뒤를 이어 KT의 새로운 수호신으로 낙점, 66경기 10승 2패 25세이브 평균자책점 3.52라는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은 도미니카공화국과 경기 후 "박영현은 대표팀에서 구위가 가장 좋은 투수"라며 "마무리 투수로 계속 뛴다면 최고의 투수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의 강점은 구위뿐만이 아니다. 경기 운영 능력도 탁월하다. 박영현은 이번 대회에서 시속 150㎞ 안팎의 직구와 130㎞대 슬라이더만 던지고 있다. 리그에서 종종 선보인 120㎞대 체인지업의 구위가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영현은 "아시안게임 당시에는 '뭣도 모르고 던진다'는 느낌이 컸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나를 시험한다는 생각으로 던지고 있다"며 "앞으로 대표팀 뒷문을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는 투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