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금투세 '폐지'로 전격 선회...'1500만' 투자자 표심 노린 중도 행보

입력
2024.11.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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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악화 땐 후폭풍… "유예해도 정쟁" 고민
폐지 발표 후 최태원 만나… '명태균'보단 '민생'
"주가하락 원인은 정부" 따지며 "선진화 총력"
'세수펑크' 속 감세 동참… 진보진영 반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정부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에 손을 들어줬다. 두 차례 유예 끝 내년 시행 예정이던 금투세는 결국 '폐지'로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 대표는 "주식 시장의 어려움과 투자자들 우려"를 결정의 결정적 이유로 설명했다. 이 대표의 선택은 대권 후보의 행보에 가깝다는 평가다. 1,500만 명 국내 주식 투자자들에게 다가가는, 경제 문제에 보다 집중하는 '민생 야당과 대권 후보자'의 이미지를 원했다는 것이다.

“1500만 투자자, 고려 않을 수 없었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는 금투세 폐지에 동의하기로 했다"며 "지금 현재 대한민국 주식 시장이 너무 어렵고 여기에 투자하고 주식 시장에 기대고 있는 1,500만 투자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금투세를 예정대로 시행했다가 자칫 주식 시장이 안 좋아질 경우, 민주당이 후폭풍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얘기다. 민주당은 2022년 대선에서 종합부동산세 확대를 고집하다 패배한 트라우마도 있다.

민생 정당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의지도 반영됐다는 평가다.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법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 탄핵까지 언급되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과감히 '민생'을 내세우면서 차기 대선 주자로서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폐지를 띄웠지만, 결국 야당 대표인 이 대표가 금투세를 매듭지은 셈 아니냐"고 말했다.

이를 반영한 듯 이 대표는 이날 'SK 인공지능(AI) 서밋'에 참석하는 등 '먹사니즘' 행보에 집중했다. 최태원 SK 회장을 만나 "우리가 도움을 드려야 하는데 못 드려서 죄송하다"며 AI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약속했다. 이어진 AI 기업들과의 간담회에서도 "투자 유치 문제가 제일 심각할 텐데, 도둑이 많이 횡행하는 시장이라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결국 정치가 중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 당연히 시행하는 게 맞지만…”

물론 이 대표는 원칙적으로 금투세 시행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열심히 땀 흘려 번 소득에 대해서도 과세를 하는데, 자본소득에 대해 과세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금투세가 거래세를 폐지하거나 줄이는 대신 도입한 제도라는 점을 강조하며 "원칙과 가치에 따르면,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강행하는 게 맞다"고도 말했다. 굳이 "아쉽지만"이라는 단서를 남긴 배경이다.

실제 이 대표를 포함, 민주당은 금투세의 시행과 유예를 두고 상당 기간 격론을 펼쳐왔다. 이 대표가 "주식 시장이 어려운데 이런 상황에서 금투세를 예정대로 하는 게 맞느냐"고 화두를 던진 게 당대표 선거 출마 당시였다.

이 대표는 이날 "유예를 하거나 개선해 시행하겠다고 하면 끊임없이 정쟁 수단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시행을 고집하든, 한발 물러나 유예를 선택하든, 이미 '폐지' 법안을 낸 정부와 여당과 충돌은 불가피했다는 말이다. 이 대표는 "정부·여당이 야당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정부 정책을 쓰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시장 방치한 정부·여당, 개선책 내겠다”

이 대표는 금투세 폐지 동의와 별개로 "주가 하락의 주원인은 정부 정책에 있다”며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문제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먼저 ①"대통령의 부인께서 주가조작을 해서 수십 억을 벌었다고 하는데 처벌하지 않는다"며 주식 시장 문제와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결부시켰다. '우량주 장기 투자'가 불가능한 이유로는 ②대주주의 지배권 문제를 꼽았고, ③대한민국 경제산업정책의 실종 문제를 지적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투자 걸림돌로 여겨졌던 지정학적 문제를 언급하면서는 ④"이 정부가 스스로 나서서 전쟁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개선책도 내놓았다. 향후 국회에서 주식 시장 선진화 방안을 다뤄야 하고 "상법 개정을 포함한 입법과 증시 선진화 정책에 총력"을 약속했다. 민주당은 앞선 금투세 토론회 직후 소액주주 권리 확대를 골자로 하는 '코리아 부스트업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기업 지배구조를 주주 친화적으로 개선하는 상법 개정안(김남근 의원)도 발의했다.


'거래세' 언급 없이 금투세 폐지 "부자감세 동참" 비판

진보 진영에선 반발이 나온다. 이 대표가 폐지 수순을 밟고 있던 증권거래세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과 관련해 "깊은 고민 없이 눈앞의 표만 바라봤다"고 비판한다. 금투세 도입이 될 경우 증권거래세율은 올해 0.18%에서 내년에는 0.15%까지 낮아진다. 기획재정부는 이로 인해 세수가 1조5,375억 원 줄어들 것으로 본다. 민주당이 '세수 펑크'를 비판하면서 감세에 동참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제1야당 대표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세금 깎아주는 일에 동참하면 민생은 누가 지킨다는 말이냐"고 꼬집었다. 정혜경 진보당 원내대변인 역시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를 비판하던 민주당이 돌연 금투세 논란을 만들고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당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민생에는 여야, 진영이 없다"며 "자본시장을 밸류업 하고 투자자를 유인할 수 있는 다각적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