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연방-입헌군주제의 불안정한 미래

입력
2024.11.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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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호주 공화제 투표

영국은 식민지 수탈의 유산을 정치 체제와 외교 네트워크 속에 남긴 채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제국의 시대를 벗어난 국가다. 국제 정치외교 무대의 공식 용어로 쓰이는 '영연방(commonwealth)’이 그 흔적이다. 코먼웰스 회원국은 명목상의 군주인 영국 국왕을 국가 수반으로 한 입헌군주국이지만, 정치 외교 등 어떠한 사안에도 일절 ‘통치’받지 않는다. 폴리네시아 국가 통가처럼 별도의 왕을 둔 회원국도 있다. 그 시스템은 연대의 정신에 따라 회원국의 자발적 합의로 지탱되며 “더불어 강해진다(Together We Are Stronger)”라는 대의를 추구한다. 2024년 현재 코먼웰스 회원국은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해 15개국이다.

호주는 그 구심력에서 가장 강하게 이탈하려는 국가 중 하나다. 호주는 1999년 11월 6일 국민투표를 통해 영연방 탈피-공화제 전환에 대한 의사를 물었다. 결과는 약 45%대 55%로 잔류 여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맹렬한 공화주의자인 노동당 소속 현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Anthony Albanese) 체제의 호주 중앙은행은 2023년 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가 그려진 5달러 지폐의 새 모델로 현 국왕 찰스 3세가 아닌 애버리진(호주 원주민) 관련 도안을 쓰기로 결정했다. 애버리진에게 호주 군주제는 인종 세탁-학살의 상징과 같은 체제여서, 20세기 이후 원주민 인권 운동은 공화주의 운동과 나란히 성장했다. 프랑스계가 다수인 캐나다 퀘벡주의 영연방 탈퇴 여론이 가장 뜨거운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군주제 옹호론자들은 공화제가 정치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실익 없는 정치 논쟁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영국의 뿌리를 국민적 아이덴티티로 중시하는 보수 유권자들이 그 주장에 동조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중적 인기도 군주제의 꽤 든든한 밑천이었다. 찰스 3세의 인기는 전대에 현저히 못 미친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