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KBS 이사회는 차기 사장 후보로 박장범 앵커를 선임하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대통령실과의 교감 속에 이뤄지는 내정 과정을 볼 때, 임명은 확실하다. 앵커에서 사장으로, 획기적인 승진 인사가 되겠다. 그가 진행한 ‘9시 뉴스’는 시청률이 무려 32% 떨어졌다는데, 최악의 실적을 보인 구성원을 사장으로 발탁한 셈이다.
□ 박 앵커는 지난해 11월 박민 KBS 사장이 임명된 뒤 ‘9시 뉴스’ 새 메인 앵커가 됐다. 윤 대통령이 박 사장을 낙점했고, 박 사장이 그를 낙점한 것은 KBS의 친정부 체제 구축의 상징처럼 비쳤다. 박 앵커는 올해 윤 대통령과 신년 대담을 진행하며,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사건에 대해 “파우치, 조그마한 백”이라 표현했다. 이는 ‘명품 수수’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되면서 ‘조그마한 파우치’는 그의 별칭이 됐을 정도이다. 그런 그가 차기 사장으로 낙점되자 KBS 기자 495명이 반대 성명을 냈다.
□ 실적 좋은, 능력 있는 직원을 승진시키는 게 기업 인사의 기본이다. 정치적 편향은 차치하고, 박 앵커는 어떤 실적을 올렸을까. 방송사 실적의 가장 큰 지표는 ‘시청률’이다. 기자들의 성명서에 따르면, 박 앵커가 진행한 ‘9시 뉴스’의 일평균 시청자는 168만 명 수준으로 전임 이소정 앵커 시절(247만 명)보다 79만 명(32%)가량이 줄었다.
□ 미국에선 워싱턴포스트(WP)가 최근 유료 구독자 8%(20만 명)를 잃었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 사설 게재가 사주이자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결정으로 좌절된 뒤 사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미 언론은 대선 후보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전통이 있는데, WP는 갑작스럽게 이를 폐기했다. 마티 배런 전 WP 편집장은 “이 결정은 분명 숭고한 원칙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KBS와 WP를 보면, 구성원들의 생계와 연계되는 조직의 실적까지 포기할 정도로 언론(혹은 일부 언론인)의 권력지향 욕구가 강력하다는 게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