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중국의 심기를 크게 불편하게 할 것이라는 미국 전문가들의 전망이 나왔다. 북한 참전이 중국의 '국제사회 중재자' 행보와 대(對)한반도 영향력을 모두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망의 근거다. 실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면전에서 "불에 기름을 붓지 말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북중관계는 '순망치한' 관계를 과시해 왔지만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을 파견한 결정으로 "양국관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엄중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짚었다.
중국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조속한 협상을 통한 휴전'을 골자로 한 자체 중재안을 발표하고 중재를 시도해왔다. 이는 "러시아를 돕지 말라"는 서방의 압박을 회피하는 동시에 "신냉전을 부추기고 있는 곳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외교적 서사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그런데 중국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유력한 우방 북한이 러시아를 돕기 위한 파병까지 나서면서 판이 어그러졌다. 미국 쪽에선 "중국으로선 애타고 짜증이 나는(chafe) 입장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는 "북한의 시도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중국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중국은 이 문제에서 무능과 마비에 갇혔다"고 진단했다.
북러 간 군사적 협력 심화가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한반도 전문가 레이첼 리 선임 연구원은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 인터뷰에서 "(파병으로) 북한은 러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키웠고 이에 따라 북한은 필요할 때마다 러시아에 더욱 의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한반도 유사시 중국의 개입뿐 아니라 러시아의 개입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사실상 독점해 온 대북 영향력이 북러 군사 협력에 잠식되고 있다는 의미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2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정상회의를 무대로 중러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이 북한 파병 문제를 논의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외신들에 따르면 시 주석은 23일 브릭스 정상회의 석상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와 관련, "분쟁 확산을 막고 불에 기름을 끼얹어 적대감을 키우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사태를 조기에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북한군 러시아 파병 문제가 불거진 직후 발언이어서 북러 밀착에 대한 중국의 불편함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미중관계에서도 북한군 파병은 변수가 될 수 있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23일 브리핑에서 "북한이 10월 초·중반 최소 3,000명의 군인을 러시아 동부로 이동시킨 것으로 평가했다"며 파병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중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알 수 없다"면서도 "한반도 안정을 바란다는 중국 발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들도 깊이 우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우리의 관점을 중국과 공유하고 중국의 관점도 수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대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는 빠짐없이 다뤄 온 만큼 북한 파병도 양국 간 주요 의제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