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서 바둑을 두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매 순간 상황을 판단해서 결단을 내리고, 실행한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책임을 져야 한 판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게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바둑을 재미없어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선택지를 골라야 하는 일상에 비하면 바둑에서의 선택은 사소할 뿐이다. 실제로 수강생에게 “저는 선택 장애가 있어서 바둑을 두는 게 너무 힘들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럴수록 바둑을 둬야 한다고 말한다. 선택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있는 그대로 결과를 받아들이고 이어질 다음 상황을 준비하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바둑 한 판을 채워나가며 그 과정을 설명하다 보면 선택이라는 게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바둑에서의 선택은 누구나 책임질 수 있을 만큼 가볍기 때문이다.
변상일 9단이 흑1에 치받았을 때 신진서 9단이 선택한 백2는 평상시 잘 두어지지 않는 수. 지금은 주변 배석 때문에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흑11은 백14를 강제하기 위한 교환. 흑이 3도 흑1에 가만히 연결할 경우 백이 손을 빼고 중앙을 선점한다. 좌변의 가치가 작아, 흑3의 끊음이 매우 작다. 백이 실전 백14에 지키자 변상일 9단은 흑15, 17로 상변을 끊는다. 백20, 24의 버팀은 백의 입장에선 최선. 결국 흑29까지 쌍방 외길 수순이며 흑이 기분 좋은 선수교환. 하지만 가만히 한 칸 뛴 흑31이 다소 아쉬웠다. 4도 흑1로 먼저 젖혀서 호구 형태를 만들 자리. 흑5의 압박 이후 흑11의 급소를 선점해 중앙 백을 추궁하는 것이 좋은 작전이었다. 실전 흑31은 앞선 타이트한 수순과 균형적인 측면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