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순방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대통령실은 사흘째 침묵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연일 김건희 여사 문제를 겨냥해 발언수위를 높이는데도 이례적으로 별 반응이 없다. 올 초 비대위원장 시절 한 대표가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을 놓고 '국민 눈높이'를 언급할 당시 득달같이 달려들어 쫓아내려던 것과 대조적이다.
한 대표는 김 여사의 사과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까지 촉구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의 인사권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현 정부의 '역린'으로 통하는 민감한 이슈를 거침없이 건드리며 윤 대통령 부부를 동시에 압박한 셈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아직 적극적으로 대응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3일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독대 준비 상황에 대해서만 "당과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원론적 입장만 내놓는 데 그쳤다.
이처럼 대통령실이 자세를 낮춘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건 일단 여건이 불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선거 브로커 명태균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고조된 상황에서 섣불리 대응했다가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계산이다. 순방 기간에 대통령실이 떠밀리듯 해명 입장을 냈다가 거짓 논란으로 비화한 만큼 김 여사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외부의 공격에 맞받아쳤다간 더 큰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특히 한 대표와의 갈등이 증폭된다면 부담은 훨씬 가중된다. 여권이 쪼개지는 모양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사태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는 '윤-한 독대'가 예정된 만큼 대통령실이 가급적 위기를 관리하려는 의도로 비친다. 반대로 16일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부산 금정구청장을 내주면 한 대표의 입지는 급격히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이에 대통령실은 선거 결과를 지켜보며 대응에 나설 전망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분간 순방 성과를 홍보하는 데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한 대표를 향한 불쾌감은 당내 친윤석열계 의원들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강승규 의원은 11일 SBS라디오에 나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한 대표가 검찰의 기소를 촉구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것을 지적하며 "어떻게 법무부 장관을 지낸 여당 대표가 '국민 감정에 따라 여론 재판을 하라'고 하느냐"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