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집단행동 8개월 만에 대통령실 고위 인사와 의대 교수들이 마주 앉았지만 의정 갈등 원인 진단과 해법을 두고 평행선을 달렸다. 양측은 "무너진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사를 늘려야 한다"와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이면 된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의정 대화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했으나 토론회가 갈등 완화의 계기가 될지는 미지수다.
서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융합관에서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정부 대표로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과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이, 서울대 의대에서는 강희경 비대위원장과 하은진 교수가 나섰다. 전공의 이탈 직후인 지난 2월 말 박민수 복지부 2차관과 김택우 전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이 맞붙은 TV토론회 이후 의정 간 공개 토론은 약 8개월 만이다.
의대 증원 필요성에 관한 시각차는 여전히 컸다. 장 수석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의료 격차, 비필수 분야 쏠림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개혁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운을 뗐다. 2,000명 증원이 비과학적이라는 의료계 주장에 대해서는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돼 의료 이용량이 정확히 측정되고, 장래 인구 변화에 따른 정밀한 예측이 가능하다"고 반박하면서 "(정부가 참고한) 세 가지 연구가 2035년에 1만 명 부족을 지적했는데 의사가 90세까지 똑같은 생산성으로 일한다는 비현실적 가정을 보완하면 필요한 의사 수는 두 배 늘어나 연간 4,000명 증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2,000명은 '최소 숫자'라는 것이다.
반면 강 위원장은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지출이 가파르게 증가 중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의료 이용량도 3배 많아 건강보험 재정이 버틸 수 없을 것"이라며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이고 건강 수명을 늘리는 게 첫 번째 대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6명으로 OECD(평균 3.8명) 최하위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평균 수명, 사망률, 회피 가능 사망률 등을 고려하면 의사가 적은 건 맞지만 부족한 건 아니다"라면서 "의사가 늘어도 지방으로 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와 관련해서는 "전문의가 늘었지만 전공 과목을 진료하지 않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며 "이들이 돌아오면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대형 병원 환자 쏠림, 지역 필수의료 위기에 대한 해법도 달랐다. 정 단장은 "의료기관들이 환자를 두고 무한 경쟁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는 불가능하다"며 "기능에 맞게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첫 단추로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달리 하 교수는 "환자들이 전원에 거부감이 커 2차 병원으로 보내면 다른 대형 병원을 찾아가더라"라며 "유기적인 전달체계도 필요하지만 의료 이용이 적정하고 건강의 질이 개선되면 환자와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다른 해법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측은 대화를 강조했지만 의사들은 대화를 위한 '증원 중단'을, 정부는 '협의 참여'를 각각 요구했다. 강 위원장은 "의견이 다른 만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그러려면 일단 (의대 증원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수석은 "협의체든 토론회든 형식에 관계없이 대화에 열려 있다"며 "의료계가 참여해 국민을 위한 의료정책을 함께 수립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의정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갈등의 골이 워낙 깊어 본격적인 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서울대 의대 비대위가 의사 대표 단체가 아니라 의료계 전체 의견을 아우르기에도 한계가 있다. 의사계 내부에서는 의정 대화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다. 경기도의사회는 "서울의대 비대위는 전공의, 의대생을 대변할 수 없다"며 "의료 농단 주범들과 야합하는 이적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전공의 한 명이라도 건드리면 강력히 투쟁하겠다던 약속을 지켜 최후의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