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축구'로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명장으로 이름을 높인 위르겐 클롭(57·독일) 감독이 드디어 침묵을 깨고 현직으로 돌아왔다. 2023~24시즌을 끝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의 사령탑을 내려놓은 클롭 전 감독은 RB라이프치히가 속한 레드불 사단의 중책에 임명됐으나 독일 현지에선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에너지 음료 회사인 레드불은 9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클롭 전 감독이 2025년 1월 1일부터 레드불의 글로벌 사커 책임자를 맡는다. 리버풀을 그만둔 이후 처음 임명되는 자리"라고 밝혔다.
레드불은 "클롭 전 감독의 임무는 레드불 글로벌 사커의 네트워크를 관장하는 일"이라며 "클럽들의 매일 일정에 관여하지 않지만 전략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레드불의 철학을 발전시키는 일을 하게 된다. 더불어 선수 스카우트와 사령탑들의 교육에도 기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레드불 사단은 독일 분데스리가 라이프치히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뉴욕 레드불스, 일본의 오마야 아르디자 등의 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클롭 전 감독은 2015년 1월 리버풀의 지휘봉을 잡은 뒤 9년 간 명장으로 군림했다. 그러다 지난 1월 "에너지가 고갈됐다"며 당분간 축구계를 떠나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지난 7월 미국 축구대표팀이 사령탑 후보로 영입하려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감독으로서 끝났다"며 거절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클롭 전 감독은 다시 축구계로 돌아왔지만 독일 현지에서는 비난에 가까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축구의 정통성과 인간미를 중시하며 '낭만 감독'으로 평가 받는 클롭 전 감독이 축구계의 극심한 상업화 등에 앞장선 레드불 사단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레드불은 2009년 독일 5부리그 클럽이던 SSV마르크란슈테트를 인수하면서 구단명을 'RB 라이프치히'로 변경했다. 독일에서 모기업을 구단명에 넣는다는 것은 정통성을 훼손하는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레드불이 "RB는 레드불이 아닌 라젠발(RasenBall)의 약자"라고 해명하면서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이 때문에 라이프치히는 독일 축구 팬들 사이에서 "가장 미움받는 클럽"으로 자리잡았다. 영국 BBC방송은 "2017년 서포서스끼리 분쟁이 일기도 했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전통이 없고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라이프치히 같은 클럽의 부상을 비판해 왔다"고 보도했다.
클롭 전 감독은 도르트문트(2008~15)를 이끌던 수장이었다. 그는 2017년 '멀티클럽' 모델을 비판하며 "나는 축구 낭만주의자이고, 축구의 전통을 좋아한다"며 "독일에서 경기 전에 'You'll Never Walk Alone'을 부르는 클럽은 두 개뿐입이다. 바로 마인츠와 도르트문트"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발언을 뒤로 하고 레드불 사단을 택했다는 것에 대해 독일 현지에선 "위선자" "영혼을 팔아넘긴 사람"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BBC에 따르면 일부에선 지난 2월 클롭 전 감독이 2023~24시즌 리버풀을 떠나겠다고 했던 발언을 조롱하며 "당시 그는 에너지가 고갈됐다고 느꼈고, 레드불 드링크만 충분히 마시면 더 이상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사태에대 독일 매체 빌트의 크리스티안 팔크 축구부장은 황당한 주장을 했다. 팔트는 최근 BBC 라디오 5 라이브 팟캐스트에 출연해 "논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지금 독일에선 '그가 영혼을 팔았을까?'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며 "(영혼을 판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결국 한 달 정도 지나면 가라앉을 거다. 이 나라에서 클롭 전 감독에 대한 사랑은 그가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는 얘긴데 독일 팬들의 분노를 더 자극하는 발언으로 보인다. BBC는 한 축구 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소개했다. "클롭의 메시지에서 긍정적인 것이 있다. 도르트문트에서 마침내 위르겐 클롭 시대를 감정적으로 마감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