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직사각형을 보고 왜 눈물이 나나"...이우환의 '마크 로스코 독해법'

입력
2024.09.2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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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갤러리 로스코·이우환 '조응'
국내서 보기 힘든 로스코 회화 6점 소개
'닮은 듯 다른' 이우환 최근작 전시 
기획 참여한 로스코 유족 "이면 바라보길"

20세기 최고의 색면추상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의 그림은 관객을 압도한다. 동시에 난감하게도 만든다. 왜 화가는 거대한 색 덩어리로 캔버스를 채웠을까. 강렬한 빨강, 주황은 기쁜 감정을 표현할 걸까. 자살하기 전에 그렸다는 무채색 그림은 우울의 상징일까.

서울 용산구 한남동 페이스 갤러리에서 2인전 '조응: 이우환과 마크 로스코'를 선보인 한국의 색면 추상화가 이우환(88) 작가는 로스코의 그림 앞에 서서 애써 의미를 찾으려는 관객에게 이렇게 말한다. "로스코의 그림은 전시장에서 당신이 느끼는 감정 그 자체"라고. 페이스 갤러리가 '서신(Correspondence)'이라고 명명한 이번 전시는 언뜻 비슷해 보이는 두 거장, 로스코와 이우환의 작품세계를 조망해 확연히 다른 작법을 짚어보게 한다. 두 작가의 전시는 서로 다른 층에서 열리지만, 이우환이 기획에 참여해 로스코의 작품을 골랐다. 마크 글림셔 페이스 갤러리 대표는 "동서양 추상 거장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감상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전시"라고 소개했다.

두 거장의 색채가 말하는 것

어둑한 2층 전시장에는 로스코의 1950~1960년대 작품이 걸렸다. 로스코 재단이 소유한 작품 16여 점 가운데 이우환 작가는 로스코의 트레이드마크인 추상 회화 6점을 선택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열 살 때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 로스코는 1920~1930년대에는 인물을 주로 그린 사실주의 화가였고, 1940년대 중반까지는 신화를 소재 삼아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렸다. 문득 자신이 그린 풍경과 인물 등 구체적인 형상이 보는 사람에게 선입견을 유발한다는 점을 깨닫고 1950년대부터는 형상 없이 색과 면으로만 이뤄진 추상화에 골몰했다.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관객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번 전시에는 강렬한 빨간색과 노란색 바탕에 초록색을 배치한 작품도 포함됐지만 대부분 검은 바탕의 무채색 작품들이 나왔다. 조명이 없어 더욱 어둡게 보이는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검은색과 회색의 섬세한 레이어(층)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우환에게도 색채는 중요한 도구다. 다만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다가오는 로스코의 그림에 비해 밝고 선명한 화법을 쓴다. 대형 캔퍼스 4점을 병풍처럼 연결한 2018년 작 '대화'를 포함한 다섯 점이 자연광이 쏟아지는 전시장에 놓였다. 강렬한 색채를 통해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로스코의 작품에 조응해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 등 색채가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배치했다. 로스코의 작품이 빛이 차단된 폐쇄 공간에서 색채를 천천히 드러낸다면 이우환의 작품은 자연광 아래 순간적으로 손에 잡힐 듯 분명한 형태로 도드라진다.

"보이는 것 너머를 바라보세요"

이번 전시 기획에는 30여 년간 아버지 마크 로스코의 유산을 관리하며 전시를 기획해온 딸 케이트 로스코와 아들 크리스토퍼가 참여했다. 전시에 맞춰 누나 케이트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토퍼는 최근 해설서 '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은행나무)를 펴낸 로스코 전문가다. 그는 "그림을 보고 감동을 느끼는 사람들은 사실 그림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발견한 감동 때문에 우는 것"이라며 "로스코와 이우환의 작품은 아름다움을 묘사할 뿐 아니라 영적인 차원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주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그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 달 26일까지.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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