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전면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스라엘군은 23일(현지시간)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해 나흘째 대규모 공습을 퍼부었고, 이날 하루에만 12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헤즈볼라는 '전술 변경을 할 때가 됐다'는 압박을 안팎에서 받고 있다. 고강도 대응으로 억지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전력 면에서 열세인 만큼 전면전을 유도하는 이스라엘 의도에 말려들면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다만 이스라엘 역시 승리를 장담할 수만은 없다. 2006년 전쟁을 치른 양측이 18년 만의 전면전에 다시 나설 경우, 중동 정세는 더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로부터 무선호출기(삐삐)·무전기(워키토키) 동시다발 폭발 공격에 이어 '2인자 표적 공습'도 당한 헤즈볼라가 대응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는 19일 화상 연설을 통해 보복을 공언했으나, FT는 "(평소처럼) 익숙한 표현을 반복 사용했고, 보복 맹세 후 로켓 공격 규모만 조금 늘렸을 뿐"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강력한 대응으로 억지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헤즈볼라 안팎에서 나온다. 레바논 친헤즈볼라 매체 알아크바르는 21일 "지금까지의 전술을 바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다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차원의 대결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고 전했다.
반면 '군사적 대응'은 이미 늦었다는 진단도 나온다. 레바논 정치 분석가인 아말 사드는 FT에 "배는 이미 오래전에 떠났고,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동일 수준으로 대응할 정보력이 없다"며 "이스라엘이 전략적 목표(자국 북부 주민 6만 명의 귀환) 달성을 저지하되, '전면전 개시' 구실을 주지 않으면서 통상의 공격 수위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확전을 바라는 분위기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방위군(IDF) 수석 대변인은 23일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 북부의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라며 "현재 레바논 남부 지역에 광범위한 정밀 폭격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IDF는 이날 레바논 내 300여 개 목표물에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이번 공습으로 최소 274명이 숨지고 1000여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튿날부터 양측이 공격을 주고받기 시작한 이래 하루 최다 인명 피해다.
전면전 임박 신호도 있다. 이날 공습에 앞서 IDF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등 헤즈볼라 군사 시설 소재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경고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관련 영상도 게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레바논 전역에 대해 더 집중적인 폭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발표"라고 전했다. IDF의 지상군 투입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승리를 확신하긴 어렵다. 헤즈볼라의 군사력은 IDF의 공격을 1년 가까이 버티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보다 월등하다. 3만~5만 명의 예비군과 12만~20만 발의 로켓·미사일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돼 '세계에서 가장 잘 무장된 비국가 행위자'로 불린다. 영국 가디언은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에서 명확한 승자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6년 전쟁은 사실상 헤즈볼라의 승리로 끝나기도 했다.
헤즈볼라를 충격에 빠뜨린 '삐삐·워키토키 폭발' 사건의 공포감은 다른 친이란 무장 세력들에도 번지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전 대원에게 모든 통신 기기의 사용 중단을 지시했고, 또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제닌 여단도 조직원들의 전자기기 사용과 관련해 새 규칙을 만들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