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에 약한' 미국 모습 때문? 베네수엘라, 4명째 미국인 구금

입력
2024.09.18 10:00
마두로 "국가 전복 시도해" 증거 없이 주장
미, 의혹 일축… '제재 완화 노린 인질' 분석
"인질 거래 선례가 체포 동기 부여" 비판도

올해 대선 승리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정권이 17일(현지시간) 자국 내에 체류하던 미국인 1명을 구금했다고 밝혔다. 지난 14일 미국인 3명을 포함, 외국인 6명을 긴급 체포한 지 사흘 만에 미국 국적자를 한 명 더 잡아들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베네수엘라 등 외국 정부와 '미국인 수감자 석방'을 조건으로 협상을 타결했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반(反)미국 국가들에 '약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미국인 인질'을 붙잡으려는 동기를 미국 정부가 스스로 제공했다는 지적인 셈이다.

마두로 "CIA가 암살 작전 주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내무부는 이날 "국가에 대한 음모를 꾸몄다"며 미국인 1명을 구금한 사실을 공개했다.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은 "(이날 구금된 미국인은) 전기 설비, 정유 시설, 군 부대 등 사진을 찍다가 수도 카라카스에서 붙잡혔다"고 설명했다.

이번 구금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최근 미국을 향해 '마두로 정권 무력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난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앞서 베네수엘라는 지난 14일 현직 해군 소속 미국인 등 총 6명의 외국인을 '마두로 대통령 암살 시도' 혐의로 체포하며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작전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미 성향인 마두로 대통령이 지난 7월 28일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한 것으로 정리되자, 미국이 '마두로 제거'를 추진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미국 백악관은 이 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또한 미국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의 미국인 구금 조치를 사실상 '인질극'이라고 보고 있다. 부정 선거 의혹으로 미국의 제재가 강화될 조짐을 보이자, 미 정부를 뒤흔들 '협상 카드'로 미국인 체포를 활용한 것이라는 얘기다. 바이든 행정부는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야권 후보였던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가 승리했다고 보고 있으며, 지난 12일 친(親)마두로 인사 16명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베네수엘라 정부는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고 '미국 주도 음모를 저지했다'는 주장을 오랜 기간 반복해 왔다"며 '인질극'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미국, 인질 협상 나설 의지 보여줬다"

마두로 정권의 미국인 체포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 정책을 둘러싼 논란으로도 번질 조짐이다. 지난해 12월 바이든 정부가 미국인 수감자 10명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미국에 수감돼 있던 마두로 대통령 측근 인사를 풀어준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해당 거래가 '인질을 잡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을 베네수엘라에 안겨 줬다는 비판도 실제로 나온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아메리카소사이어티/카운슬오브더아메리카스(AS/COA)의 에릭 팬스워스 부대표는 WSJ에 "인질은 '언제든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협상 자원'이라는 말이 있다"며 "미국은 (인질 관련) 협상에 나설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이는 (마두로 정권이) 협상을 계속할 인센티브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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