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과 성, 두 개의 굴레를 알린 흑인 여성

입력
2024.09.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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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 메리 처치 터렐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는 “미국의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흑인 인권단체”로서 20세기 인종차별 철폐 운동의 주역이자 역사 그 자체라 불린다. 하지만 1909년 출범한 NAACP보다 앞선 1896년, 흑인 여성들의 인권운동단체 ‘전미유색인여성협회(NACW, 현재는 NACWC)’가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출범했다. NACW의 설립 취지는 “우리의 목표와 관심사가 (인종 불문) 모든 선량한 여성의 목표와 동일하다는 것을 무지하고 의심 많은 세상에 보여주”겠다는 거였다. 그들 조직의 모토는 "(각자가) 오르는 만큼 우리(전체)가 고양된다(Lifting as We Climb)"였고, 그 모토를 만든 이가 메리 처치 터렐(Mary Church Terrell)이다.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태어난 터렐은 해방 노예 아버지가 사업에 크게 성공한 덕에 남부 신흥 흑인 부르주아의 일원으로 성장했다. 오하이오 앤티오크칼리지를 거쳐 오벌린 칼리지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고, 대학 강사를 거쳐 1887년 워싱턴DC의 한 흑인고교 교사로 일했다. 그는 91년 같은 학교 교사였던 로버트 H. 터렐(1857~1925)과 결혼했다. 하버드대 출신인 로버트는 훗날 DC 지방법원 판사와 하워드대 법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메리 터렐은 1896년 고향 친구가 백인 사업 경쟁자의 린치에 희생되면서 본격적으로 차별 철폐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인종적 고양(racial uplift)’, 즉 성공한 흑인이 늘어나면 나머지 흑인들의 지위도 교육과 노동, 지역활동 등을 통해 점차 나아져 궁극적으로 인종차별이 사라지리라 믿었다. 그는 NACW 초대회장으로 만 5년 재임하며 서프라제트, 특히 흑인 여성 참정권 운동에 힘썼다.
그의 생각은 비판의 여지가 적지 않지만, 그는 흑인 여성이 “인종과 성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는 유일한 집단이란 사실”을 먼저 깨닫고 세상에 이해시킨 선구자적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