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 가족들 잔소리 듣기 싫어서 고향 집에 안 가고 싶네요.'
추석 연휴를 앞둔 13일 블라인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명절 증후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 명절 스트레스 상당 부분은 대인관계에서 기인한다. 특히 기성세대가 젊은 층에 충고한답시고 툭 던지는 잔소리는 대표적 갈등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런 현실 탓에 온라인 공간에서는 명절 때마다 '잔소리 메뉴판'이 주목받는다.
'잔소리 메뉴판'이란 설이나 추석처럼 친인척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 때 단골로 들을 수 있는 잔소리에 요금을 매긴 것이다. 예컨대 직장인에게 "슬슬 결혼해야지?" 하고 물을 거면 50만 원을 내라는 식이다. 해당 잔소리가 당사자에게 그만큼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니 삼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종의 풍자인 셈이다.
2016년 무렵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잔소리 메뉴판'은 누가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여러 버전이 생겼다. 유명한 메뉴판 중 하나는 3년 전 제작됐다. 해당 메뉴판 제목 밑에는 '그간 무료로 제공되었던 저의 걱정은 2021년부터 유료 서비스로 전환되었으니 선결제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현금 혹은 계좌이체만 (결제가) 가능하다. 신세계상품권도 가능하다'라거나 '2만 원당 치킨 기프티콘 1장으로도 대체 가능하다'는 지불 요령도 적혀 있다.
해당 메뉴판을 보면, 중고생의 거부감이 가장 큰 잔소리는 남과의 비교였다. 무심코 '우리 딸은 전교 1등인데'라고 했다간 20만 원을 내야 한다. 대학생 및 취업준비생에게 30만 원을 주고 싶지 않다면 '(구직 희망 기업에 대한) 눈 좀 낮춰 봐'라는 충고는 자제해야 한다.
직장인에게 '너 아직도 코인하니?'라고 물으면 무려 600만 원을 줘야 한다. 부부에게 '아들(딸)이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발언을 할 경우 55만 원이 나간다. 외모 지적도 문제다. 오랜만에 만났다고 '머리가 좀 휑해졌다'라고 했다간 500만 원이 털린다. 탈모 문제가 당사자에겐 큰 고충인 탓이다.
괜한 잔소리를 해서 요금 청구서를 받지 않으려면 명절 시작 때부터 '부정적인 대화 소재는 꺼내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잔소리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기성세대의 각오가 있어야 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심리학에는 '연합효과'라는 개념이 있는데, 긍정적인 주제로 대화를 시작해야 기분 좋은 이야깃거리가 계속 생긴다는 의미"라며 "최근 선선해진 날씨나 추천해 주고 싶은 맛집 같은 소재로 말문을 열어보라"고 조언했다.
잔소리를 걱정하는 젊은 층은 '발상의 전환'을 하면 도움이 된다. 임 교수는 "고향에 가서 보기 싫은 사람을 먼저 떠올리기보다는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소수의 가족을 그리워하고, 그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