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부터 국내산 새꼬막 못 먹는다" 양식 포기하는 어민들 속출

입력
2024.09.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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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집중호우에 씨 마른 꼬막
바닷속 꼬막 대신 종밋 가득 차
1년 6개월 뒤 피해 드러날 듯
어민들 "정화작업이라도" 호소


“겉은 평온해 보여도 바닷속은 아주 처절한 상황입니다. 올해 바다를 보고 도저히 양식을 할 수 없었어요."


전남 보성군 회천면에서 연 10억대 새꼬막 양식을 하는 박용규(67)씨는 득량만 바다만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아버지부터 대를 이어 꼬막을 키웠던 그에겐 더없이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지만, 올해 같은 해는 없었다. 꼬막의 씨가 완전히 말라버려 양식 자체를 포기한 탓이다. 5일 회천면 새꼬막 양식장에서 만난 박씨는 "지금 이맘때는 그물을 건져 올려야 할 가장 바쁜 시기지만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득량만 해역에선 박씨처럼 새꼬막 양식을 완전히 포기한 가구들이 속출하고 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물을 던진 어민들도 허탕을 치기 일쑤다. 겉보기에는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깨끗한 바다지만 물속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종자, '씨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탓이다.


폭염에 집중호우까지…이상기후에 씨 마른 꼬막

자연의 경고는 지난해 9월쯤부터 시작됐다. 홍합의 일종인 '종밋'이 무서운 속도로 번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밋은 새꼬막과 서식지가 비슷해 눈에 보이지 않는 유생 단계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한다. 종밋 유생이 번성하면 새꼬막 유생이 자랄 수 없고, 새꼬막 양식 실패로 이어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바닷속에 종밋 유생이 30~50%, 새꼬막 유생이 50~70%일 경우 수익성이 있어 새꼬막 양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심상찮다. 전남도해양수산과학원 장흥지원에 따르면 새꼬막 산란 시기인 지난 7월 8일 기준 바닷속 유생은 종밋이 74%, 새꼬막이 26% 수준이었다. 꼬막 양식을 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지난달 22일 이뤄진 마지막 유생 조사에서 바닷속 유생 비율은 종밋이 93%, 새꼬막 7% 수준으로 전남 여자·득량만 일대 바닷속은 종밋 유생으로 가득 찬 것으로 나타났다. 박씨는 "새꼬막 양식은 바닷속에 나무 말뚝을 박고 그물을 친 뒤 달라붙은 꼬막 유생들을 깊은 바다로 가져가 키우는 식으로 이뤄진다"며 "400줄(1줄은 그물 100m) 양식을 하면 경비가 5억 원가량 드는데, 그물을 던져도 종밋만 달라붙는 상황이니 도저히 양식을 할 수 없어 포기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종밋이 크게 번성한 것은 유난한 폭염과 집중호우 등 이상기후 탓이다. 전미애 국립수산과학원 해양수산연구사는 "6월 말부터 집중호우가 장기간 지속돼 내륙의 민물이 바닷속에 밀려 들어왔는데, 새꼬막 양식지는 수심이 깊지 않아 저염분 직격탄을 맞았다"며 "집중호우 이후엔 폭염으로 인한 고수온이 지속되면서 꼬막 유생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에 이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반면 종밋은 광염성(염분 농도 변화에 견디는 성질)과 고수온, 저산소에 내성이 있어 새꼬막 서식지를 종밋이 모두 차지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고 분석했다.

전문가 "2026년산 국내산 새꼬막 없다"

전남 여자·득량만 일대는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새꼬막 생산량의 85%, 양식 규모 94%를 차지한다. 타 지역 역시 대부분 여자·득량만 일대에서 종패를 받아 양식하는 식이어서 사실상 국내산 새꼬막 생산은 전남 여자·득량만에 의존하는 형국이다. 조재진 국립수산과학원 양식산업과장은 "유생 단계 새꼬막이 완전히 자라는 데 약 1년 6개월이 걸린다"며 "올해는 작년 생산분이 시장에 출하돼 당장 피해가 눈에 띄지 않지만, 2026년부터 심각성이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상황이 지속되면 2026년부터는 국내산 새꼬막을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엄포만은 아닌 이유다. 어민들은 올해 양식을 포기하더라도 2027년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정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씨는 "현실적으로 이미 올해 발생한 피해는 돌이킬 수 없다"며 "이미 올해는 꼬막 양식이 불가능한 상황인 만큼 이 기회에 종밋과 꼬막 유생을 모두 제거하는 정화 작업을 실시해야만 피해가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보성=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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